[칼럼] 포스트잇 속의 Zoloft

나는 오래전 기억 속에서 하나의 장면을 떠올린다. 1980년대 말, 미국으로 이민을 간 친척 중 한 명이 1990년대 초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에게 여러 가지 문구류를 선물해주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3M의 포스트잇과 포스트잇 플래그(Post-it Flag)들이었다. 그중 유독 많이 받았던 것은 ‘Zoloft’라는 글자가 찍힌 포스트잇이었다. 나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그저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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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규격 외 인간이 필요한 이유

일본의 우편제도에는 정형 우편물(定形郵便物)과 정형 외 우편물(定形外郵便物)이 있다. 크기와 요금은 다르지만, 둘 다 똑같이 우편물이다. 작은 봉투에 꼭 맞는 물건이 있듯, 큰 봉투에 담아야 하는 물건도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을 규격에 맞추려 한다면 억눌림과 낭비가 생길 뿐이다. 규격 외의 존재가 있어야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얼마 전 부모 면담에서 지난 학기 가장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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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주쿠 알타, 기억과 재개발의 교차점에서

신주쿠역 동쪽 출구 앞은 오랫동안 도쿄의 얼굴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그 중심에 있던 신주쿠 알타는 1980년 개업 이후 45년간 젊은이들의 문화와 패션을 상징했지만, 2025년 2월 문을 닫고 현재는 해체 공사가 한창이다. “알타 앞”이라는 약속의 풍경은 이제 기억 속 장면으로 남았다. 나는 1990년대 말 일본에 어학연수를 왔을 때, 처음으로 신주쿠 알타 앞의 북적임을 경험했다.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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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영칼럼 44> 당신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 10년 후의 자화상은? – 숭의여고에서의 진로진학상담이 시작되었다. 정상 등교 시간보다 이른 아침 7시 10분에 시작되는 상담임에도 불구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진로 상담에 임하는 학생들이 대견하기만 하다. 진로진학상담교사이기에 대입 상담보다는 진로 및 직업을 위한 로드맵이 메인이다. 대입 상담은 자신의 진로와 직업을 위한 하나의 징검다리일 뿐이다. 하지만 아직 꿈을 정하지 못한 학생들이 문제다. 그렇다고 배치표에 기반하여 무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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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한국학교 이머전 교육, 민족교육의 새로운 도전

동경한국학교는 올해로 개교 70주년을 넘긴 유서 깊은 학교이다. 초·중·고등부가 함께 자리한 이곳은 본국 교육과정, 영미권 교육과정 그리고 일본 교육과정이 어우러진 독특한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시도는 바로 초등부에서 실시되고 있는 영어 이머전(Immersion) 교육이다. 이머전 교육은 1963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외국어 교육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언어를 과목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수학·과학·생활 등 일반 교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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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령사회 일본, ‘65세 고령자’ 기준을 다시 생각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을 보니, 또다시 고령자 비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9.4%에 달해 약 3600만 명을 넘어섰다. 75세 이상만 따져도 16.1%를 차지한다니, 일본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초고령 사회다. 도쿄 같은 대도시는 그나마 젊은 층이 눈에 띄지만, 지방에 가면 이미 인구의 절반 이상이 고령자처럼 보일 정도다. 더 흥미로운 것은, 65세 이상이면서 여전히 일하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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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일본·미국, 다른 듯 닮은 ‘일하는 방식’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에서 여러 프로젝트와 회의를 함께 하며 협업을 해온 경험은 나에게 각 나라가 가진 고유한 ‘일하는 방식’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정식으로 한 회사의 직원으로 일한 경험은 아니지만, 여러 학술 프로젝트와 학회 활동을 통해 이 차이는 너무도 뚜렷하게 다가왔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나라의 방식이 우월한 것이 아니라, 모두 다르지만 각기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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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그리고 ‘조복(造福)’의 가르침

나는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신하리 537번지에서 태어났다. 10형제 중 아홉째로, 머슴이 네 명이나 있던 비교적 넉넉한 집안이었지만, 삶의 바탕은 늘 흙과 땀의 무게였다. 계절마다 이어지는 농사일은 어린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들녘의 바람과 흙냄새 속에서 자라난 기억은 지금도 내 삶의 깊은 뿌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시면서 삶은 크게 바뀌었다. 안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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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 와세다의 감성을 품은 공간

몇 년 전 개관과 동시에 큰 화제를 모은 와세다대학교 국제문학관, 일명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는 이제 단순한 도서관을 넘어 와세다의 얼굴이자 도쿄의 새로운 문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초창기에는 예약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비교적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어, 연일 많은 관광객과 학생들로 붐비고 있다. 특히 서양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도 눈에 띄며, 와세다의 홍보에 있어 큰 축을 담당하는 장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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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무덤(耳塚) 앞에서 배우는 역사의 교훈

교토의 여름은 푸르른 호수와 고즈넉한 사찰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 고요한 풍경 속에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상처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 최대 담수호순인 비와코를 거쳐 나는 교토에서 조선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호화롭게 서 있는 ‘토요토미히데요시’의 사당(신사) 맞은편에 초라하게 자리한 ‘귀무덤’이라 불리는 봉분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사실은 코무덤이라고 한다. 여행길에서 마주 한 ‘귀무덤(耳塚)’은 역사의 아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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