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춘미칼럼>인왕산 자락, 윤동주의 하늘과 마주 걷다

늦가을의 서촌은 오래된 시집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는 듯했다. 경복궁역 1번 출구, 인왕산과 윤동주 시인을 같이 느끼자고 모인 ‘마중물독서회’ 일본인 회원들 다섯 명의 얼굴 위로 바람이 첫 문장을 열어주고 있었다. 단풍의 마지막 잎새들이 질서를 지키듯 떨어지는 계절. 늦가을 우리는 그 잎새의 속도에 마음을 맞추어 인왕산을 올랐다. 윤동주 시인과 함께 걷는 마음으로. 인왕산에서 바라본 서울은 빛과 그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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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의 조화를 비비다 – 아이들과 함께한 비빔밥 한 그릇

일본의 고등학교는 여름방학을 보내고 9월에 개학을 한다. 하지만 문화제 준비가 곧바로 이어지다 보니 아이들은 학업 분위기에 쉽게 몰입하지 못한다. 고3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수업 중 교재에서 한국 음식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비빔밥이나 떡볶이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라고 외쳤다. 그래서 준비했다. 입시와 졸업을 앞두고 불안과 고민 속에 있는 아이들에게 작은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자 ‘비빔밥 체험 수업’을 마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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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춘미칼럼>『소년이 온다』, 그리고 읽는다는 일

최근 ‘마중물 한국어 독서회’에서는 화재가 되었던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인 학습자들과  8주에 걸쳐 함께 읽었다. 각 장을 나누어 읽고 한 사람씩 각 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다시 낭독하고 어떤 말이 인상깊었는지 그 안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어떻게 공감하게 되었는지 등을 이야기 나누며 읽어 내려갔다.  그 중에서도 1장 ‘어린 새’를 소리 내어 읽던 날을 잊지 못한다. ‘어린 새’는 당시 희생된 중학생이었던 한 아이에 비유되었고 그 광주의 한 아이, 상처 입은 몸과 영혼, 그리고 그가 바라보았던 참혹했지만 맞설 수 밖에 없었던 ‘어린 새’의 상황을 고요한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나갔다. 글은 담담하게 쓰여 있었지만,하나 하나의 어휘 그리고 한 줄의 문장  안에는 그 때의 진실을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담기지  않는 고통이 글자 안에 담겨져 묵직묵직하게 놓여 있었다. 그렇게 무겁게 내려 않아 있는 정제된 고통의 글들을 같이 읽었던 독서회 멤버들은 그들 스스로가 저 밑바닥에서 끌어 낸 감정에 스스로의 어휘들을 녹여내 느낌들을 토로하고 공유했다. 1장의 낭독이 끝나갈 무렵, 한 일본인 학습자가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저는 그 새가… 영혼 같다고 느꼈어요. 그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날아가는 거예요, 그 아이의 마음이…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날아가는 거예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제 어머니께서 운명하셨을 때에 어머니의 몸 속에서 홀연히 무언가가 날아간다고 느꼈거든요. 아주 조용히, 천천히 떠나가는 느낌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이 엄마의 영혼을 가진 작은 새였을 것 같아요. ” 그녀의 목소리가 천천히 잦아들었다.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뭔가 가슴 속에 먹먹함이 치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그 말은 해석이 아니라, 감응이었다. 짧은 단어와 묵직한 문장에서 바로 전달해 오는 감응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어린 새’와의 일체감일수도 있으리라.  그건 언어로 설명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인 의미였다. 『소년이 온다』는 결코 쉽지 않은 책이었다. 한국인인 나로서도 입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광주라는 이름, 표현할 수 없는 아픔, 죽음과 침묵, 잊히는 고통과 잊혀지고 싶지 않은 기억, 영원히 잊고 싶은 기억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이어졌다. 나는 그 글을 읽는 동안, 아니 독서회에서 읽기로 결정하기 전부터 매일 악몽에 시달렸다. 나는 주인공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빙의되어 매일 꿈 속에서 시위대가 되고 게엄군의 추격에 피해 다니고 고통을 겪고 죽음을 맞고 시신이 되어 다른 시신들과 가로로 쌓여져 트럭에 실린 채 어디론가 실려가는 꿈을 거의 매일 꾸었다. 같이 글을 읽던 이도 같은 경험을 했다고 했다. 자신의 목이 잘려나가고 누군가가 같이 쓰러져 끌려가고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꾸준히 그 책을 마지막까지 읽어 나갔다. 그리고 가장 아픈 장면에서 가장 조용한 언어로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이 책은… 미안하다는 말을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같아요.” 또 다른 학습자의 말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언어를 넘어서 한국이 가진 한국의 고통에 다가서는 순간, 나는 그 앞에서 매번 숙연해진다. 그들은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가진 역사와 기억과 감정을 함께 읽고 있었던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이해하는 일이 아니다. 타인의 삶과 슬픔을, 내가 모르는 역사와 감정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슬픔을 함께 짊어지지는 못하더라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조용한 연대이다. 그날, “영혼이 날아가는 거예요.”라고 말했던 그 학습자의 목소리를 나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으며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나는 말했다.  “우리는 이 글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해요. 이 아픔을 피하면 안 돼요. 글을 읽는 우리의 고통은 그들이 겪은 것에 비하면 단발적이고 깃털 같은 것일지도 몰라요. “ 그렇게 우리를 감정의 심연까지 끌어내렸던 『소년이 온다』를 마치고 우리는 지금도 매주 다른 테마의 책을 읽고 있다. 읽는다는 것, 그것은 언어 수업이자, 다양한 삶의 기억을 향한 조용한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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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춘미 선생님의 약밥까지…나고야・중부지역 한국어교원 연수회 훈훈한 마무리

나고야를 중심으로 일본 중부지역 한국어 교육자들을 위한 『2025 나고야・중부지역 한국어교원 연수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이번 연수회에서는 국립국어원 홍혜진 학예연구관의 어문 규범 특강과 후쿠오카대학 주현주 교수의 대조언어학 기반 발음 교수법 강의가 진행됐다. 참석한 교원들은 진지한 모습으로 강의를 경청하며 교육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교수법을 배웠다. 김미숙 교수의 사회로 열린 토론 집담회에서는 각 조별로 나눠 활발한 토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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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축구 교류전, 한‧일 우정을 꽃피우다

2025년 2월 9일, 일본 도쿄의 足立區立關原小學校(아다치구립 세키하라 초등학교)에서 ‘제21회 어린이 우호 친선 축구 교류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었습니다. 이 대회는 ‘재일본대한체육회관동본부’에서 주최하고 ‘FC니시아라이주니어’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한국과 일본 그리고 북한 학생들이 축구를 통해 우정을 나누는 뜻깊은 자리입니다. 매년 足立區(아다치구)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스포츠를 통한 화합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아쉽게도 북한 팀이 참가하지 못했지만, 한국과 일본의 초등학생들이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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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춘미칼럼<BTS? 아니 KTS>

BTS? 아니 KTS 지난 1월 18일, 주일한국대사관 동경문화원 세종학당에서는 1년에 한 번 개최되는 한국어 학습자를 위한 성대한 잔치가 열렸다. ‘교류회’라는 이름으로 한 해 동안 세종학당에서 공부를 한 일본인 한국어 학습자들이 갈고 닦은 한국어로 노래, 연극, 시, 한국 경험 등 다양한 장르의 발표를 하는 것이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포함한 500여명이 넘는 한국 한국 문화 학습자들은 제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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