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중물 한국어 독서회’에서는 화재가 되었던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인 학습자들과 8주에 걸쳐 함께 읽었다. 각 장을 나누어 읽고 한 사람씩 각 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다시 낭독하고 어떤 말이 인상깊었는지 그 안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어떻게 공감하게 되었는지 등을 이야기 나누며 읽어 내려갔다.
그 중에서도 1장 ‘어린 새’를 소리 내어 읽던 날을 잊지 못한다. ‘어린 새’는 당시 희생된 중학생이었던 한 아이에 비유되었고 그 광주의 한 아이, 상처 입은 몸과 영혼, 그리고 그가 바라보았던 참혹했지만 맞설 수 밖에 없었던 ‘어린 새’의 상황을 고요한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나갔다.
글은 담담하게 쓰여 있었지만,하나 하나의 어휘 그리고 한 줄의 문장 안에는 그 때의 진실을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담기지 않는 고통이 글자 안에 담겨져 묵직묵직하게 놓여 있었다. 그렇게 무겁게 내려 않아 있는 정제된 고통의 글들을 같이 읽었던 독서회 멤버들은 그들 스스로가 저 밑바닥에서 끌어 낸 감정에 스스로의 어휘들을 녹여내 느낌들을 토로하고 공유했다.
1장의 낭독이 끝나갈 무렵, 한 일본인 학습자가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저는 그 새가… 영혼 같다고 느꼈어요. 그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날아가는 거예요, 그 아이의 마음이…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날아가는 거예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제 어머니께서 운명하셨을 때에 어머니의 몸 속에서 홀연히 무언가가 날아간다고 느꼈거든요. 아주 조용히, 천천히 떠나가는 느낌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이 엄마의 영혼을 가진 작은 새였을 것 같아요. ” 그녀의 목소리가 천천히 잦아들었다.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뭔가 가슴 속에 먹먹함이 치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그 말은 해석이 아니라, 감응이었다. 짧은 단어와 묵직한 문장에서 바로 전달해 오는 감응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어린 새’와의 일체감일수도 있으리라. 그건 언어로 설명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인 의미였다.
『소년이 온다』는 결코 쉽지 않은 책이었다. 한국인인 나로서도 입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광주라는 이름, 표현할 수 없는 아픔, 죽음과 침묵, 잊히는 고통과 잊혀지고 싶지 않은 기억, 영원히 잊고 싶은 기억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이어졌다. 나는 그 글을 읽는 동안, 아니 독서회에서 읽기로 결정하기 전부터 매일 악몽에 시달렸다. 나는 주인공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빙의되어 매일 꿈 속에서 시위대가 되고 게엄군의 추격에 피해 다니고 고통을 겪고 죽음을 맞고 시신이 되어 다른 시신들과 가로로 쌓여져 트럭에 실린 채 어디론가 실려가는 꿈을 거의 매일 꾸었다. 같이 글을 읽던 이도 같은 경험을 했다고 했다. 자신의 목이 잘려나가고 누군가가 같이 쓰러져 끌려가고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꾸준히 그 책을 마지막까지 읽어 나갔다.
그리고 가장 아픈 장면에서 가장 조용한 언어로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이 책은… 미안하다는 말을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같아요.” 또 다른 학습자의 말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언어를 넘어서 한국이 가진 한국의 고통에 다가서는 순간, 나는 그 앞에서 매번 숙연해진다. 그들은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가진 역사와 기억과 감정을 함께 읽고 있었던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이해하는 일이 아니다. 타인의 삶과 슬픔을, 내가 모르는 역사와 감정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슬픔을 함께 짊어지지는 못하더라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조용한 연대이다.
그날, “영혼이 날아가는 거예요.”라고 말했던 그 학습자의 목소리를 나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으며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나는 말했다.
“우리는 이 글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해요. 이 아픔을 피하면 안 돼요. 글을 읽는 우리의 고통은 그들이 겪은 것에 비하면 단발적이고 깃털 같은 것일지도 몰라요. “
그렇게 우리를 감정의 심연까지 끌어내렸던 『소년이 온다』를 마치고 우리는 지금도 매주 다른 테마의 책을 읽고 있다. 읽는다는 것, 그것은 언어 수업이자, 다양한 삶의 기억을 향한 조용한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