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서촌은 오래된 시집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는 듯했다.
경복궁역 1번 출구, 인왕산과 윤동주 시인을 같이 느끼자고 모인 ‘마중물독서회’ 일본인 회원들 다섯 명의 얼굴 위로 바람이 첫 문장을 열어주고 있었다. 단풍의 마지막 잎새들이 질서를 지키듯 떨어지는 계절. 늦가을 우리는 그 잎새의 속도에 마음을 맞추어 인왕산을 올랐다. 윤동주 시인과 함께 걷는 마음으로. 인왕산에서 바라본 서울은 빛과 그늘이 겹겹이 얹힌 하나의 거대한 시였다.
그가 올려다보았을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의 눈길을 그의 눈길 위에 가만히 겹쳐 보았다. 목적지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곳까지 걸어가는 과정이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 발걸음에 우리의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포갠 짧지만 긴 여행.
■ 사직공원, 호랑이 앞에서 첫 구절을 읽다
사직공원에 들어서자 도시의 소리가 한 겹 물러나고, 그 자리를 바람이 채웠다. 사람들의 소리가 잦아들 즈음 이정표로 삼았던 호랑이 동상이 늦가을의 빛을 품은 채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그 앞에서 자연스레 고개가 들렸다.
우리들의 옷깃을 스치는 바람 사이로 떠오른 시구.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그가 바라보았을 하늘을 향해, 이제 우리도 발을 내딛는다.
■ 인왕산 정상 338m, 바람 위에 서다
인왕산의 계단은 그 자체로 작은 시련이었다. 가파른 경사가 이어지는 동안 숨은 목울대까지 차올랐지만, 그 숨마저 투명해지는 듯했다. 고도를 조금씩 올릴수록 몸은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안개처럼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수록 단풍의 붉은 빛이 시야를 열어주고, 도시의 윤곽은 한 겹씩 또렷해졌다.
정상에 이르자 바람이 가장 먼저 우리를 맞았다.
그 바람은 낯익은 한 구절을 데려왔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정상에 선 우리도, 아래의 도시도 모두 그가 노래했던 “사랑해야 할 것들” 속에 함께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을 꾹꾹 눌러가며 정상을 마주한 서로에게 조용히 미소를 건네며, 그의 하늘을 품에 안았다.

■ 성곽길을 따라, 시간의 옆구리를 걷다
성곽길의 성벽은 오래된 시간의 피부 같았으며 손끝에 닿는 돌과 이음새들은 누군가의 체온을 오래 품어온 듯했다.
작은 바람이 발끝을 스칠 때, 또 하나의 시구가 우리를 따라왔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서시’가 인왕산에서 쓰인 시는 아니지만, 이 자락의 바람이 그의 마음에도 비슷한 떨림을 남기지 않았을까.
오늘의 바람은 괴로움보다 ‘멈춰 듣게 하는 고요한 울림’에 가까웠다.

■ 수성동계곡, 계곡 사이에 시가 내려앉다
계곡에 닿자 뒤돌아본 인왕산은 병풍처럼 서서 우리를 살며시 감싸주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계곡바람을 맞으며 떡과 김밥을 나누는 점심은 단순했지만 까르르 웃음을 이끌어냈고, 더 깊어가는 가을만큼 서로의 마음을 단단하게 다져 주었다.
마침 60세가 된 2025년을 축하하는 의미까지 보태어져 더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계곡에서 바라본 인왕산은 그에게 어땠을까? 인왕산의 내려온 바람과 수성동 계곡의 물은 슬픔을 씻어버린 대신, 슬픔이 지난 자리의에 더 단단한 부드러움만 남겨놓는 듯했다.
문득, 우리가 걷는 길이 그의 일상의 산책길과 이어져 있다는 것에 소소한 감정이 밀려왔다. 문학관으로 향하는 오솔길은 느리게 흘렀다. 그 위에 우리의 발걸음도 천천히 흘렀다.

■ 윤동주 문학관·시인의 언덕 — 고뇌가 내려앉은 자리
문학관 위 시인의 언덕에서 바라본 서울은 인왕산 정상의 풍경보다 더 낮고 더 가까워서, 오히려 그의 마음에 가까이 닿는 느낌이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언덕을 올라 마주한 시비를 보고 우리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언덕 시비에 있던 ‘서시’를 같이 읽어내려갔다.
그들과 함께 ‘서시’를 소리 내어 읽으며, 언어와 정서는 달라도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는 마음의 결은 닿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그의 고통과 그 울림은 국경을 넘어 서로의 마음으로 이어졌다.
문학관에 이르자, 실재보다 더 큰 정서의 무게가 먼저 다가왔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관이 아니라, 그의 젊은 시절의 언어와 고뇌가 여전히 뚝뚝 떨어져 내리는 듯한 곳이었다. 그 중에서도 1전시실에서 3전시실로 가는 통로라고 할 수 있음직한 2전시실을 들어가니 시인이 지니고 있었을 무게가 전신을 덮었다. 그 묵직함과 차가움이 머리끝까지 전해져 왔다.
우리는 한국어의 얇고 투명한 자음과 모음들 속에서 윤동주의 고통과 꿈을 더듬어 찬찬히 읽고 있다. 그 시간을 같이 해 오고 있는 그들과 함께 서니, 윤동주의 시가 품은 시대의 어둠과 인간적 빛이 더 깊숙이 마음속으로 스며들어왔다.


■ 담벼락의 작은 표지판—시인의 하루가 머물던 자리
누상동 골목, 다세대 주택 담장에 조용히 붙어 있는 ‘윤동주 하숙집’ 표지판.
밋밋한 그 표식이 오히려 짧은 시구처럼 은은하게 다가왔다.
이 거리에서 윤동주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꿈꾸었을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뉘엇뉘엇 해가 져 가는 하늘. 오늘 우리가 올려다본 하늘도 그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 하루를 닫는 고요 속에 머물며
“내일 밤이면 별이 더 밝아질까.”
인왕산과 서촌길. 늦가을의 하늘 아래를 걸어온 우리에게 이 문장은 작은 다짐처럼 남았다.
오랜 걸음 끝, 따뜻한 불빛 아래 앉아 오늘의 길을 한 문장처럼 되짚었다.
인왕산의 바람, 성곽의 돌결, 계곡을 따라 내려오던 바람소리, 윤동주의 고요와 숨결…
모든 풍경은 결국 걸어야만 읽을 수 있는 시였다.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나의 시’를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날 마중물독서회 일본인 회원들과 함께한 우리의 걸음은
윤동주의 하늘 아래에서
각자의 시 한 줄을 새롭게 얻어 돌아오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