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창의성이 피어오르는 순간 ― 일본 대학 교실에서 본 작은 혁명

대학에서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발표하는 것을 보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며칠 전 내 수업에서 벌어진 장면은 그 익숙한 풍경을 완전히 뒤바꿨다. 한 학생이 ‘창의성’이라는 단어를 실체로 구현해낸 것이다. 그는 발표를 시작하자마자 유튜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단순한 BGM을 틀었다. 그리고 그 배경음악을 무한 반복으로 흐르게 하는 동시에, 다른 컴퓨터에서는 AI 음성을 연동시켜 발표자의 ‘상대역’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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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보졸레 누보 황금기의 종말과 성숙한 소비의 시대

2000년대 초반, 필자가 일본 유학을 왔던 시기,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이 시기만 되면 일본 뉴스는 어김없이 보졸레 누보에 들썩이곤 했다. 비행기로 막 공수된 ‘갓 만든 첫 와인’이 도착하면 공항 활주로에서 상자를 옮기는 장면까지 뉴스로 다뤄질 만큼 분위기는 뜨거웠다. 그 열기는 일본 사회가 프랑스 문화에 품고 있던 동경과, ‘그 해 처음 생산된 와인을 가장 먼저 맛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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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곳 ― 미국 국립 제2차 세계대전 박물관의 의미

미국 지구과학연합(AGU) 연례총회가 뉴올리언스에서 다시 열리면서, 도시의 역사와 공간을 체험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뉴올리언스를 처음 방문하는 연구자들에게 하나의 확실한 추천지를 꼽으라면, 단연 미국 국립 제2차 세계대전 박물관(The National WWII Museum)이 그 후보가 된다. 이 박물관은 단순한 관광 명소를 넘어, 현대 국제질서와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함께 성찰하게 해주는 중요한 교육 공간이다. 이 박물관은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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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본 청년에게 배우는 ‘다른 길’ ― 마일드 양키가 던지는 메시지

오늘 우리 학교에서 대학 입시 면접시험이 있었다. 지원자들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선택한 활동을 스스로 설명하고, 그 경험 속에서 어떻게 진로를 찾았는지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동아리든 지역 활동이든,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왜 했는지를 말할 수 있는 학생들이었다. 그 뒤에는 하고 싶은 일을 존중해주는 부모의 지원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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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02세 어머니를 살해한 71세 딸… 초고령 사회가 만든 구조적 실패와 한국의 정책 과제

도쿄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102세 치매 어머니 살해 사건’은 개인의 극단적 선택을 넘어, 초고령 사회가 맞닥뜨린 돌봄 정책의 구조적 실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71세 딸은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홀로 돌보며 10분마다 반복되는 화장실 요구, 밤낮없는 부축, 새벽 시간대의 낙상 사고, 그리고 긴급 구조 요청마저 실질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한계에 내몰렸다. 어머니는 단 이틀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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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AI가 만들어주지 않는 것들 ― 학생들이 깨달은 ‘이해의 힘’

어제, 나는 AI에 지나치게 의존해 발표 자료를 만든 학생들에게 따끔하게 이야기를 했다. 겉보기에는 유려하고 매끄러운 프레젠테이션이었지만, 정작 발표자는 자료 속 단어조차 제대로 읽지 못했고,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채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데 급급했다. 듣는 이에게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없는, 발표자에게는 불안과 혼란이 가득한 시간이 이어졌다. 그런데 오늘, 같은 학생들이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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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AI 시대, ‘쉽게 만든 발표’가 학생을 망친다

대학 강의실에서 AI를 활용하라고 지도해온 것은 효율성을 높이고 학습의 방향을 잡아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 효율성이 오히려 학생들의 사고를 마비시키는 장면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학생 발표 시간, 화면에는 그럴듯한 슬라이드가 떠 있었지만, 발표자는 그 안의 단어조차 제대로 읽지 못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 심지어 자신이 읽을 수 없는 한자를 그대로 화면에서 내려 읽는 모습이 이어졌다. AI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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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출판의 틀을 부순 밤 ― KADOKAWA 80주년 행사가 던진 충격

나는 일본 3대 출판사 중 하나인 KADOKAWA에서 출간된 『스고스기루 지리도감(すごすぎる地理の図鑑)』의 공저자로 참여했다. 이 책은 일본지리학회(日本地理学会) 가 공식 감수한 지리 입문 시리즈로, 전문성과 대중성을 함께 담은 교육용 콘텐츠다. 이번 KADOKAWA 창립 80주년 기념식에 내가 학회를 대표해 공저자 자격으로 그 자리에 서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전형적인 출판사 기념행사를 예상했다. 축사와 인사말, 그리고 회사의 역사를 되짚는 영상이 이어지는 정중하고 조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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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본 애니메이션의 정점, 귀멸의 칼날을 아시나요

처음엔 제목조차 낯설었다. ‘귀멸의 칼날’이라니, 귀신이 나오고 칼로 싸운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 작품은 슈에이샤의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된 만화로 시작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애니메이션화된 시리즈다. 이미 수십 편의 TV 시리즈와 극장판도 여러 편이 나왔지만, 나는 그동안 단 한 화도 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일본 애니메이션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일본에 살다 보면, 애니메이션을 사랑해서 일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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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음이 부러졌을 때

우리는 종종 누군가가 힘들어한다고 하면 본능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힘내요.”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더 버텨봐.”하지만 이 말들이 얼마나 잔인한 격려일 수 있는지, 그것을 깨닫기란 쉽지 않다. 얼마 전 한 카운슬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우울증이나 불안증, 강박증 등 마음의 병을 ‘보이지 않는 골절’에 비유했다. 뼈가 부러져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빨리 걸어봐, 뛰어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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