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필자가 일본 유학을 왔던 시기,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이 시기만 되면 일본 뉴스는 어김없이 보졸레 누보에 들썩이곤 했다. 비행기로 막 공수된 ‘갓 만든 첫 와인’이 도착하면 공항 활주로에서 상자를 옮기는 장면까지 뉴스로 다뤄질 만큼 분위기는 뜨거웠다. 그 열기는 일본 사회가 프랑스 문화에 품고 있던 동경과, ‘그 해 처음 생산된 와인을 가장 먼저 맛본다’는 독특한 기쁨이 만들어낸 하나의 계절 풍경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본 언론의 보도는 사뭇 다르다. 보졸레 누보의 수입량이 급감하며 사실상 ‘황금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4년 일본의 보졸레 누보 수입량은 104만 케이스, 역대 최고치에 달했다. 하지만 올해는 피크의 7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주력 수입사였던 기린홀딩스·아사히·삿포로마저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했다. 지금은 산토리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와인 소비 자체가 줄었다기보다는, ‘보졸레 누보’라는 특정 상품에 대한 열광이 사그라든 것에 가깝다. 소비가 다변화되고 취향이 세분화되면서, 한때 과도하게 집중되었던 시즌형 이벤트 소비가 자연스럽게 조정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와인 시장에서도 새로운 지역 와인, 로컬 양조장의 성장, 다양한 가격대의 선택지가 등장하며, 과거처럼 “올해도 누보가 왔다”는 외침만으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시대가 지나간 셈이다.
여기에 일본 사회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팬데믹 이후 외식과 회식 문화는 확실히 줄었고, 일본인들의 소비는 더욱 ‘조용하고 검소하게, 소소하게’ 변화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은 늘었지만 일본 내수의 활기는 이전만 못하다는 체감도 크다. 이런 흐름 속에서 보졸레 누보를 둘러싼 ‘한철 소비 축제’가 유지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이것을 단순한 쇠퇴로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일본 와인 시장이 성숙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방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와인을 ‘일회성 이벤트의 주인공’으로 소비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더 다양한 지역, 스타일, 가격대의 와인을 즐기는 방향으로 소비 패턴이 이동한 것이다. 지방 와이너리의 성장, 로컬 와인의 존재감 확장도 이런 변화와 맞닿아 있다. 한때 일본 전역을 들썩이게 했던 보졸레 누보의 상륙 소식은 이제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 자리를 메운 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다양성’과 ‘성숙한 취향’이다. 이것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도 공유하고 있는 소비 변화의 흐름이기도 하다.
송원서 (Ph.D.)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 NKNGO Foru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