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누군가가 힘들어한다고 하면 본능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힘내요.”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더 버텨봐.”
하지만 이 말들이 얼마나 잔인한 격려일 수 있는지, 그것을 깨닫기란 쉽지 않다.
얼마 전 한 카운슬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우울증이나 불안증, 강박증 등 마음의 병을 ‘보이지 않는 골절’에 비유했다. 뼈가 부러져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빨리 걸어봐, 뛰어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마음이 부러진 사람에게 우리는 너무 쉽게 “힘내라”고 말한다. 그것은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는 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말이 필요할까. “얼마나 아프니.” “얼마나 힘들었니.” “충분히 쉬어.”
이 짧은 문장들이 진심 어린 치료의 시작이 된다. 마음이 부러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조언이나 격려가 아니라, 그저 그 고통을 함께 인정해주는 사람이다.
나는 교단에 서는 사람으로서, 이런 마음의 병을 앓는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종종 고민한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치료의 단계를 가늠할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렇지 않다. 그 상처는 오랜 시간 누적된 고통과 환경 속에서 만들어지고, 하루아침에 치유되지 않는다.
‘정신력이 약해서 그렇다’거나, ‘감사한 마음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식의 말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마음이 힘든 사람은 감사할 여유조차 없다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요즘 사회에는 이렇게 마음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건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복잡해진 사회 속에서 우리는 이제 ‘정신력’이 아니라 ‘회복력’으로 살아가야 한다. 마음이 부러졌을 때 필요한 건 근성과 인내가 아니라, 쉼과 이해, 그리고 기다림이다.
몸의 건강만큼이나 마음의 건강을 돌보는 일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작은 신호에도 귀 기울이며, 스스로를 더 사랑하고 돌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건강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송원서 (Ph.D.)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 NKNGO Foru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