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무덤(耳塚) 앞에서 배우는 역사의 교훈

교토의 여름은 푸르른 호수와 고즈넉한 사찰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 고요한 풍경 속에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상처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 최대 담수호순인 비와코를 거쳐 나는 교토에서 조선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호화롭게 서 있는 ‘토요토미히데요시’의 사당(신사) 맞은편에 초라하게 자리한 ‘귀무덤’이라 불리는 봉분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사실은 코무덤이라고 한다. 여행길에서 마주 한 ‘귀무덤(耳塚)’은 역사의 아쁜 흔적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정유재란 당시 ‘토요토미히데요시’는 조선인의 씨를 말리라는 잔혹한 명령과 함께 그 증거로 처음에는 귀를, 나중에는 코를 잘라 오게 하고 그 숫자로 전쟁의 공을 가늠했다고 한다. 잘려진 조선인의 귀와 코는 수만 개에 달해, 소금에 절여져서 교토로 보내졌고 지금도 그 흔적이 봉분 속에 묻혀 있었다. 기록으로 5만이라 하나 실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살아 있는 이의 코마저 잘라갔다는 기록을 마주할 때 역사의 참혹함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선다. 인간의 잔혹함 앞에 숨조차 막힐 정도로 몸서리가 쳐진다.

(2006년 8월, 미미쯔카(귀무덤) 앞에 선 필자)

더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오늘의 현실이다. 귀무덤은 자물통으로 잠겨 있어 향 하나 올릴 수도 없는 채 초라하게 방치돼 있다. 그러나 불과 몇 걸음 건너편에는 가해자인 ‘토요토미히데요시’를 모신 사당(토요쿠니 신사)가 화려하게 서 있다. 피해자의 영혼은 외면당하고, 가해자는 신격화되어 떠받들어지고 있는는 역설적 풍경. 그 앞에서 우리는 역사의 정의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결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책임을 묻고, 내일을 살아갈 세대에게 교훈을 남겨야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바로 이런 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초라하게 서 있는 귀무덤)

(화려하게 서 있는 토요토미히데요시를 따 받드는 사당)

돌아오는 길에 일본인들이 재물의 신으로 모시고 있는 신라인 장보고의 흔적을 만났다. 그리고 일본으로 끌려와 노예처럼 살다 간 조선인 도공들의 숨결도 느꼈다. 억압 속에서도 그들은 기술을 남기고 문화를 전했다. 절망 속에서도 삶을 이어간 선조들의 강인한 혼에 작은 위안을 얻었다. 그러나 귀무덤 앞에서 멈춰 섰던 발걸음은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았다. 역사의 아픔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자, 미래 세대에게 반드시 전해야 할 유산이었다.귀무덤의 침묵은 무겁다. 그러나 그 무게는 우리가 반드시 짊어져야 할 기억의 무게다. 아픈 역사를 외면하지 말고 끝까지 기억하며,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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