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 그리고 ‘조복(造福)’의 가르침

나는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신하리 537번지에서 태어났다. 10형제 중 아홉째로, 머슴이 네 명이나 있던 비교적 넉넉한 집안이었지만, 삶의 바탕은 늘 흙과 땀의 무게였다. 계절마다 이어지는 농사일은 어린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들녘의 바람과 흙냄새 속에서 자라난 기억은 지금도 내 삶의 깊은 뿌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시면서 삶은 크게 바뀌었다. 안동으로 옮겨 중학교를 다니며 갑자기 변한 삶의 무게와 외로움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혼자 독립하여 대구에서 스스로 자립해야 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세상 속에 버려진 삶을 혼자 이어가야만 하는 고단함은 어린 마음에 무거운 짐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단단히 세워준 과정이기도 했다.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신락리 537번지)

안동에서 살던 시절, 울적한 마음속에 심신이 지치면 종종 도산 서원을 찾았다. 그곳은 나에게 있어 그냥 유적지가 아니라, 퇴계 이황 선생의 학문과 인격이 깃든 나의 정신 수양의 장소였다. 제 작년, 오랜 세월을 건너 다시 도산서원을 찾았을 때, 현관 앞에는 500년 세월을 버텨온 팔뚝 굵기의 회양목이 여전히 서 있었다.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 앞에서 나는 시간의 덧없음과 더불어 변치 않는 가르침의 힘을 동시에 느꼈다. 서원 안을 둘러보던 중, 천체의 운행과 별자리를 기록한 옛 자료들이 눈길을 끌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별자리의 질서를 탐구했던 이황 선생의 학문의 깊이는 오늘날의 과학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옛 학문이 지닌 치열함과 통찰에 경외심 마저 느껴졌다.

(도산 서원을 둘러보는 필자)

잠시 도산서당에 앉아 사색에 잠겨 있을 때, 안내를 맡은 분이 작은 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는 두 글자가 적혀있었다. ‘조복(造福)’. 사람들은 흔히 복은 받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기를 원한다. 건강복, 자식복, 재물복, 장수복 등 다양한 복을 받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늘이 내려주기를 기다리는 기복(祈福)이다. 퇴계 선생이 말한 ‘조복(造福)’은 다르다. 그것은 복을 스스로 지어가는 삶인 것이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남의 선행을 드러내 칭찬하는 마음가짐이 결국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더불어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므로 스스로 복을 지어가는 삶을 살아가라는 뜻이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교훈을 넘어,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지탱하는 근본 원리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적 풍요 속에 살고 있지만, 정작 마음의 빈곤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거짓과 위선, 폭력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자기 권리만 앞세우며 타인의 권리는 외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시대일수록 퇴계 선생이 남긴 ‘조복’ 두 글자는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복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지어가는 것이다. 작은 선행을 드러내고, 타인의 허물을 덮으며, 내 마음을 닦아가는 과정속에서 진정한 복이 싹튼다. 도산서원의 고요한 바람 속에서 나는 마음 깊은 울림을 얻었다. 삶이 내게 준 시련과 경험을 밑거름 삼아 이제는 ‘복을 짓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울림을. 이 울림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건네는 퇴계 선생의 가장 값진 가르침이요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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