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다시 든 붓

[ 유년의 캔버스를 깨우다 ]

매주 화요일이면 마음이 아이처럼 들뜬다. 동료들과 미술학원으로 향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꽤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던 내가 일본으로 건너온 지 20여 년 동안 붓은 삶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정년을 불과 1년 앞둔 지금, 나는 다시 캔버스 앞에 섰다. 무언가 열망할 대상이 있다는 것,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이 이토록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내 인생의 화첩(畵帖)을 거슬러 올라가면 두 번의 커다란 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도내 그리기 대회에서 받은 최우수상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전국 대회에서 받은 금상이다. 수많은 대회에 나갔지만 이 두 번의 기억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빛나는 상장 뒤에 나를 이끌어주신 두 분의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이셨던 선생님은 참으로 괴팍한 분이셨다. 학교 선배이자 동네 이웃이었던 선생님은 농번기면 자습을 시켜놓고 논으로 달려가기 일쑤였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서슬 퍼런 선생님의 호통 앞에 누구도 불만을 갖지 못했다. 그 엄한 선생님이 방과 후 미술부를 담당하셨다. 사실 내가 미술부를 계속 하고 있었던 건 대단한 포부라기보다, 집에 일찍 가면 해야 했던 고된 농사일을 피하고 싶은 마음과 몇 년간 계속 함께 미술부 활동을 했던 단짝 친구 때문이다. 어느 날, 자신 있게 내민 내 그림을 보신 선생님은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셨다. “이걸 그림이라고 그렸냐! 머릿속을 다 비우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그 후 한 달 동안 선생님은 그림 한 장 그리지 못하게 하셨다. 그러다 어느 날 툭, 낡은 그림 뭉치를 건네셨다. “똑같이 베껴 그려라.” 나중에야 알았다. 그 그림들은 전국 대회 입상작들이었고, 선생님은 시골 아이에게 ‘진짜 좋은 그림’을 보여 주기 위해 한 달 내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그 작품들을 구해오셨던 것이다. 나는 미친 듯이 그 그림들을 따라 그렸다. 색채를 연구하고 붓질의 궤적을 쫓으며 밤낮없이 몰두했다. 그 결과 서 너달이 지난 뒤 내 그림은 달라져 있었다. 선생님은 그림을 잘 그리는 분은 아니지만, 제자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정확히 가리켜 줄 줄 아는 분이셨다. 그 투박한 ‘베껴 그리기’는 내 생애 가장 단단한 기초 훈련이 되었다.

중학교에 진급해 만난 미술 선생님은 내게 또 다른 세계를 선물해 주셨다. 천사 같은 미소를 지닌 그 선생님은 열정도 대단해서 읍내 다방을 빌려 주변의 학교 선생님, 학생들과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나는 그 때 그저 선생님이 좋아서,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은 순수한 마음으로 붓을 놀리고 미술 공부에 몰두했다. 중학교 1학년 여름, 선생님은 우리 미술부 학생들을 경주 자택으로 초대해 주셨다. 마당에 연못이 있는 고즈넉한 한옥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그림을 배웠던 시간은 내게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특히 경주 계림 숲에서 마주한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젤을 세우고 숲 곳곳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의 화려한 기법과 색감 앞에서 나는 붓을 꺼낼 용기조차 내지 못한 채 압도당했었다. 그날 밤, 벅차오르는 떨림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 일주일은 나를 또 다른 그림 세계로 인도했고, 예술에 눈을 뜨게 했다. 다시 태어난 나는 그 결실로 전국 대회 금상이라는 영광을 안게 된 것이다.

1983년 처음 교직을 시작하고도 20여 차례의 전시회에 참여하면서 붓을 놓지 않았던 내가, 왜 일본에 와서는 이토록 오랫동안 그림을 잊고 살았을까? 낯선 타국 생활의 무게가 내가 감당하기엔 꽤나 무거웠던 모양이다. 오늘 다시 붓을 드니 비로소 가슴이 뛴다. 캔버스의 빈 공간 위로 계림 숲의 바람 소리와 두 분 선생님의 얼굴이 겹쳐 흐른다. 지금도 그 숲에는 누군가 앉아 꿈을 그리고 있을까? 이번에 한국에 가게 되면, 꼭 경기도 어딘가에 살고 계신 선생님을 찾아뵙고 싶다. 그리고 말씀드리고 싶다.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그 넓은 세상 덕분에 내가 다시 붓을 들 용기를 얻었다고. 가끔 꿈속에서라도 그 시절 경주 계림숲으로 가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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