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작은 등불 하나를 손에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불빛이었습니다. 그는 그 빛을 볼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보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불빛을 보고 나와 부딪치지 않을 수 있겠지.’ 그래서 그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당당하게 밤길을 걸었습니다. 자신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와 ‘탁!’ 하고 세게 부딪쳤습니다. 맹인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보시오! 당신은 눈도 없소? 나는 맹인이라 앞을 보지 못하지만, 당신은 내가 들고 있는 이 등불도 보지 못했소?’ 어둠 속에서 부딪친 사람은 당황한 듯 맹인의 손에 들린 등불을 더듬어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아이고…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들고 있는 등불은 이미 꺼져 있습니다.’ 그 순간, 밤공기 속에 이상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맹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들고 있던 등불이 꺼져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한참 동안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맹인과 조금씩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는 옳다’, ‘나는 잘하고 있다’, ‘나는 좋은 마음으로 행동했다’ 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들고 있다고 믿는 등불이 꺼져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나는 배려한다고 생각했는데 상대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정의롭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는 차가운 판단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선한 일을 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칭찬받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했던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소경’이 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만이 소경이 아닙니다. 돈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사람보다 돈만 보입니다. 도박에 빠진 사람은 세상보다 카드와 숫자만 보입니다. 권력에 취한 사람은 사람의 눈물보다 자리와 힘만 보입니다. 무엇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느냐에 따라 우리는 언제든지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했느냐’보다 ‘왜 그것을 했느냐’인지도 모릅니다.
겉으로 보기에 선한 행동이라도 그 마음이 비어 있다면 그것은 이미 꺼진 등불일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세상 기준으로는 부족해 보일지라도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심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은 어쩌면 누구보다 밝은 눈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인생 속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의 등불을 들고 살아갑니다. 그 등불이 아직도 켜져 있는지, 아니면 이미 꺼져 있는지 가끔은 멈춰 서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봐야 합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가슴이 조금 아려온다면, 어쩌면 우리의 등불은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