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자연 체험은 평생의 스승이다

  • 지금이라도 아이들을 농촌과 자연으로 보내야 하는 이유

며칠째 쉬지 않고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보니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매스컴에서는 장마가 끝났다고 했지만 하늘은 여전히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를 쏟아낸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퍼붓다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멈추고 다시 세차게 내리기를 반복한다. 뉴스에서 낙동강 하류 지역의 피해 소식이 이어진다. 안타까운 마음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 물난리 속에서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내가 자란 고향은 낙동강과 위수천이 만나는 안계평야 끝자락의 작은 농촌 마을이다. 지금처럼 수문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던 시절 조금의 비에도 본류가 역류하여 넓은 들판이 거대한 호수로 변하곤 했다. 네 살 무렵의 어느 여름날에는 마을 공동 우물까지 물이 차올라 주민 모두가 산으로 피난을 갔던 기억도 새롭다. 어른들에게 홍수는 생계를 위협하는 재난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조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끝없이 펼쳐진 물 위에 커다란 플라스틱 대야(다라이)를 띄워 배 삼아 타고 다니며 떠내려오는 사과와 참외 그리고 수박 등을 건져 올린다. 운이 좋으면 살아있는 닭이나 강아지 심지어 돈주머니를 발견하기도 한다. 평생 바다를 구경할 기회가 없었던 농촌 아이들에게 홍수는 일 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거대한 자연 놀이터인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 속에서 교과서에서보다 훨씬 값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산허리 바위에 눈금을 그어 물이 얼마나 불어나는지 관찰했고 한 시간 뒤 수위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기록하며 그 이후를 예상하기도 했다. 물살의 방향을 살피며 자연스럽게 기상과 물흐름 현상을 배우기도 했다.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잉어가 어떤 길을 따라 본류로 되돌아가는지를 관찰했고 물고기의 습성과 생태를 몸으로 익혔다.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지만 우리는 자연 속에서 과학자가 되었고 관찰자가 되었으며 탐험가가 되었다.

특히 잉어잡이는 어린 시절 최고의 학교였다. 물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잉어들은 급하게 본류로 돌아가기 위해 일정한 길을 찾는다. 그 길목에 그물을 설치하려면 물의 흐름을 읽어야 하고 물고기의 습성을 알아야 한다. 아무 데나 그물을 친다고 잡히는 것이 아니다. 밤새 급류 속에서 버티며 기다리다가 그물에 전해지는 작은 진동 하나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들어 올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인내를 배웠고 실패를 배웠으며 기다림의 가치를 배웠다.

오늘날 아이들은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수많은 정보를 접한다. 그러나 정보와 경험은 다르다. 물고기에 관한 영상을 백 번 보는 것보다 직접 물속에 들어가 한 마리를 잡아보는 경험이 더 깊은 가르침을 준다. 농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것보다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어보는 경험이 더 오래 기억된다. 교육학자 존 듀이는 ‘교육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말했다. 자연 체험은 바로 삶 속에서 배우는 교육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아이들은 자연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자라며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논과 밭을 본 적도 없이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비가 얼마나 왔는지보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에 더 관심을 갖는다. 개구리 울음소리보다 게임 효과음에 더 익숙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행정당국과 교육계의 소란함으로 학교에서 조차 체험학습의 실행을 꺼리고 있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인간은 원래 자연 속에서 배우며 성장하는 존재이다. 어린 시절 내가 경험했던 홍수와 들판 그리고 물고기와 강물은 그냥 추억이 아니다. 그것들은 지금도 내 삶을 이끄는 스승이다. 자연은 두려움을 가르쳤고 용기를 가르쳤으며 기다림과 절제, 협동과 생존의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 그때 몸으로 익힌 교훈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이들을 농촌으로 보내자. 논과 밭에서 흙을 만지게 하자. 계곡과 강가에서 자연을 관찰하게 하자. 농부의 땀을 보게 하고 씨앗이 자라는 과정을 경험하게 하자. 물고기를 잡아 보고 별을 바라보며 밤을 보내게 하자. 그 경험들은 시험 점수로 환산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훗날 아이들이 인생의 어려움 앞에 섰을 때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될 것이다. 어린 시절의 자연 체험은 하루의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평생을 함께하는 스승이며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인생의 교과서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학원이 아니라 더 넓은 들판과 더 깊은 자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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