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오줌보 축구

쓱싹, 쓱싹!’ 아랫집 아저씨가 뒷마당에서 칼을 간다. 칼날이 숫돌에 미끄러지는 소리에 겨울 공기가 잘게 쪼개진다. 주위를 또래 아이들 예닐곱이 둥그렇게 둘러서 있다. 눈동자들은 유난히 반짝이고, 아무도 말은 하지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리고 그 끝에 무엇을 손에 쥘 수 있을지. 아이들은 아저씨 곁을 맴돌며 말 대신 눈빛으로 부탁을 보낸다. “아저씨, 오늘… 그거 꼭 주세요!” 내일은 우리 아버지 회갑이다. 모처럼 마을의 큰 잔칫날이다. 어머니는 몇 해 전부터 이 날을 위해 품앗이를 해 두셨다. 밀주는 순이네 집에서, 감주(단술)은 철교네 집에서 그리고 오늘은 돼지 차례이다. 작년 영철이네 누나 혼례 때 우리 집에서 돼지를 보내주었으니 이번에는 영철이네 집에서 우리 집으로 돼지를 보내온 것이다. 시골에서는 집에서 기르던 돼지를 집에서 잡아먹지 않는다. 마음이 불편해서이다. 그래서 이웃끼리 서로 바꾼다. 돼지는 돼지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마음이 덜 아프게 하기 위해 만들어 낸 약속 같은 것이다. 여덟 시간을 도와주면 언젠가 여덟 시간의 노동으로 되돌려받는 계산서도 장부도 없는 동네의 질서, 바로 ‘품앗이’이다. 어머니는 그 질서를 믿고, 아버지의 회갑을 위해 오랜 시간 품앗이를 쌓아 두셨다. 그리고 오늘, 한꺼번에 우리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쾌애애액…!’ 돼지의 고통스러운 소리가 마을을 찢는다. 아저씨가 오늘은 약주를 꽤 드신 모양이다. 평소 같으면 한 번에 끝낼 일을 오늘은 자꾸 엇나간다. 네 다리를 꽁꽁 묶고, 네 명의 동네 아저씨들이 달라붙어 눌러도 돼지는 끝까지 버틴다. 발버둥칠 때마다 피가 사방으로 튄다. 모두가 힘들어한다. 돼지도, 아저씨도. 아이들은 그 광경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바람이 차다. 숨을 고르고 다시 돌아봤을 때는 이미 작업이 끝난 뒤다. 스무 번도 넘게 싸운 끝에 돼지는 조용해졌다. 마당에는 숨죽인 침묵이 내려앉는다. 아저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준비해 둔 끓는 물을 돼지 몸에 퍼붓기 시작한다.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손놀림은 다시 정확해진다. 칼끝이 털을 훑고 지나가자 금세 뽀얀 돼지 속살이 드러난다. 큰 도마 위에 덩그러니 놓인 벌거숭이 돼지 한 마리.

아저씨는 우리 동네에서 돼지를 잡는 사람이다. 그 대가로 앞다리 하나를 챙기고, 등골도 가져간다. 등골은 소주 한 잔 곁들여 날로 드신다. 몸에 좋다며 웃으신다. 하지만 돼지를 잡을 때면 늘 술에 취해 있다. 그리고 꼭 같은 말로 중얼거린다. “이젠 그만 둬야지…! 정말 그만 둬야지…!.” 그 말의 무게를 나는 그때는 몰랐다. 늘 곁에 서 있었지만, 그 뜻은 어른이 되어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털을 다 밀고 나면 돼지 배를 가른다. 내장을 꺼내고, 미리 받아 두었던 피를 그 속에 붓는다. 선지다. 피가 굳지 않도록 소주도 조금 섞는다. 그렇게 삶아내면 그게 바로 진짜 순대인 것이다. 내가 아는 순대는 바로 이 순대이다. 돼지 창자에 피를 가득 채워 삶아낸 것. 그 맛은 고향의 맛이고 조상의 맛이다. 요즘은 이런 순대를 찾아보기 힘든다. 재료도 맛도 너무 달라져 버렸다. 하지만 사실, 아이들의 관심은 순대가 아니다. 아이들이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따로 있다. 돼지 오줌보. 그걸 달라고, 제발 흠집 내지 말고 떼어 달라고, 아이들은 아저씨 곁에 바짝 붙어 앉아 하루 종일 눈으로 애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아저씨는 아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멀쩡하게 터지지 않은 돼지 오줌보를 아이들에게 건네준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 물로 깨끗이 씻고, 바람을 불어넣는다. 손끝으로 감각을 살피며 적당히 부풀린 뒤, 실로 입구를 단단히 묶고 가위로 끝을 다듬는다. 균형을 맞추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축구공 하나가 탄생한다. 천연가죽 축구공이다.

아이들은 공을 들고 뒷산으로 달린다. 오래된 묘들이 듬성듬성 박힌 잔디밭. 언젠가부터 그곳은 우리들의 운동장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차면 오줌보는 금세 터진다. 반드시 잔디 위여야 한다. 발에 힘을 실어도, 빼도 안 된다. 조심스럽게, 아주 가볍게 차야 한다. 혹시라도 자기 발길에 공이 터지기라도 하면, 그 아이는 다음 돼지 잡는 날까지 우리들의 공공의 적이 된다. 그래서 모두가 조심한다. 조심하면서 즐긴다. “차범근!” “이회택!”을 외칠 때마다 공은 하늘로, 땅으로, 다시 우리 발 앞으로 돌아온다. 가슴이 터질 듯하다. 정말로 기분이 째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 즐거움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리 조심해도 공은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 서너 시간쯤 차고 나면, 얇은 가죽은 운명을 다한다. 해가 기울고, 산 그림자가 길어질 즈음이면 모두 같은 생각을 한다. 곧이다,이제 곧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두려워하며, 모두가 마음속으로 똑같이 빌고 있다. ‘제발…, 제발 내 발길에는 터지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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