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총리의 두 번째 집권기(2012년 12월~2020년 9월)는 일본 경제정책사에서 가장 급진적인 통화정책 실험기였다. 이른바 ‘아베노믹스’는 엔화 약세를 유도해 수출을 확대하고 디플레이션을 탈출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2025년 현재, 그 후유증은 일본 경제 전반에 깊게 남아 있다.
전례 없는 금융완화와 엔저 유도
2013년 일본은행은 양적·질적 통화완화(QQE)를 도입해 국채, ETF, 회사채까지 대규모로 매입했다. 이로 인해 일본은행의 자산은 GDP의 30%에서 100% 이상으로 확대됐다. 동시에 마이너스 금리와 수익률곡선 제어(YCC) 정책이 시행되며 엔화 가치는 급격히 하락했다. 엔/달러 환율은 2012년 말 86엔에서 2015년 125엔까지 상승하며 수출기업의 실적 개선과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디플레이션 탈출과 성장의 한계
엔저와 금융완화는 명목 GDP 성장과 고용 개선에 기여했다. 2013~2019년까지 일본의 명목 GDP는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고, 실업률은 3% 이하로 하락했다. 그러나 실질 GDP 성장률은 정체됐고, 인플레이션 목표인 2% 달성은 실패했다. 마이너스 금리 도입 이후 오히려 엔화는 절상되며 정책 효과가 제한됐다.
코로나19와 정책의 한계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아베노믹스의 한계를 드러냈다. 일본 정부는 GDP의 7%에 달하는 재정지출을 단행했지만, 이미 확대된 일본은행의 대차대조표는 추가 완화 여력을 제한했다. 이에 따라 엔화는 안전자산으로서의 신뢰를 잃고, 2024년에는 엔/달러 환율이 158엔까지 하락하며 34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탈아베노믹스와 엔화 신뢰 회복 과제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2023년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하고, 2024년 4월 기준금리를 0.1%로 인상하며 ‘탈아베노믹스’를 선언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여전히 일본의 재정건전성과 통화정책의 신뢰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엔화의 구매력은 주요국 대비 낮아졌고, ‘빅맥지수’에서도 일본은 G7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결론
아베노믹스는 단기적으로 엔저를 통해 수출과 고용을 개선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디플레이션 탈출과 경제성장이라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과도한 금융완화는 일본은행의 정책 여력을 소진시켰고, 엔화의 국제적 신뢰를 약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