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으로 기억하는 성당

가실성당/낙산성당 나는 유아 영세를 받았지만 사정이 있어 성인이 되고 다시 세례를 받았다. 낙산성당에서 6개월 동안 수녀님과 성경 공부를 하고 난 뒤 신부님의 평가를 통과하고서야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30년이 지나고 도쿄의 한인성당에서 견진 성사를 받아 신앙인으로서의 나를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낙산성당(가실성당)에 다니던 시절, 나는 그곳이 그렇게 오래된 성당인 줄 몰랐다. 1895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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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생님 (1)

국민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참으로 괴짜같고 무서운 분이셨다. 5학년을 마칠 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선생님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가까이 가기 어려운 존재셨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선생님 덕분에 나는 인생에서 가장 많은 것들을 배웠다. 깡촌 시골 아이였던 내가 감히 상상도 못 했던 피아노를 처음 배운 것도 그때였다. 그 경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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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람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랑합시다!’라고 외치는 사람은 정작 자신은 가장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고, ‘정직합시다!’라고 외치는 사람은 실제로는 가장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다.”.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살아오며 돌아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이 분명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힘들 때면 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며 견뎌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의 주제가 ‘사랑’이었던 날들을 떠올려 보면, 그날은 가장 사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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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앞산

[ 어느 동네건 앞산은 있다 ] 어느 동네에나 앞산은 있다. 앞에 있어서, 늘 마주 보고 있어서, 혹은 너무 가까워 굳이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되었기에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내 기억에도 그런 고향 앞산이 있다. 한국의 보통 남성들이 품고 사는 앞산의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내 고향 앞산은 낙동강이 크게 휘돌아 흐르고 그 끝자락에서 지류인 위수강이 합쳐지는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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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나라(2)

[ 일본의 통김밥 풍습 ‘에호마끼’, 한류 영향으로 김밥도 등장 ] 매년 1, 2월이 되면 일본의 편의점과 백화점 식품 코너에는 김밥과 비슷한 음식이 진열된다. 자르지 않은 김밥처럼 생긴 이 음식은 일본의 절기 음식인 ‘에호마끼(恵方巻)’로 입춘 전날인 ‘세츠분(節分)’에 먹는다. 최근에는 한류 확산의 영향으로 한국식 김밥을 에호마끼로 판매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일본에서는 입춘 전날을 세츠분이라 부르며, 한 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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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나라(1)

일본은 장기적인 경제 침체 속에서도 놀랄 정도로 잘 버티고 있다. 그리고 한 번씩 이상하리만큼 다양한 경기 부양책이 시도되기도 하다. 얼마 전 2009년 3월 1일을 기준으로 등록된 모든 외국인에게도 현금을 지급한 시책이 기억에 남는다. 17세 이하와 65세 이상에게는 2만 엔, 그 외 성인에게는 1만 2천 엔을 국적에 상관없이 일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국내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목적이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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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구만

나는 개그를 좋아한다. 일본에 살면서도 개그 프로그램만큼은 챙겨 본다. 웃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웃음 속에 숨어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좋기 때문이다. 한국의 「개그콘서트」를 보다 보면, 유난히 마음에 걸리는 유행어가 하나 있다. “씁쓸하구만…!” 몸집 큰 왕초가 이리저리 구겨지며 내뱉는 그 한마디는, 웃음을 터뜨리게 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슴 한켠을 찌른다. 오늘, 나는 그 왕초처럼 정말 ‘씁쓸한’ 하루를 보냈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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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가디건

흔히들 5월을 가정이 달이라 부른다. 가족과 스승 등 감사를 전해야 할 기념일들이 줄을 잇는 달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노래했지만, 요즘의 세상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5월 앞에 ‘잔인하다’는 수식어가 더 자주 붙는 듯하다. 화면 속을 채우는 복잡하고 날 선 사건들을 보고 있자면 산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건처럼 느껴져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하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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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다시 든 붓

[ 유년의 캔버스를 깨우다 ] 매주 화요일이면 마음이 아이처럼 들뜬다. 동료들과 미술학원으로 향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꽤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던 내가 일본으로 건너온 지 20여 년 동안 붓은 삶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정년을 불과 1년 앞둔 지금, 나는 다시 캔버스 앞에 섰다. 무언가 열망할 대상이 있다는 것,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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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오줌보 축구

쓱싹, 쓱싹!’ 아랫집 아저씨가 뒷마당에서 칼을 간다. 칼날이 숫돌에 미끄러지는 소리에 겨울 공기가 잘게 쪼개진다. 주위를 또래 아이들 예닐곱이 둥그렇게 둘러서 있다. 눈동자들은 유난히 반짝이고, 아무도 말은 하지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리고 그 끝에 무엇을 손에 쥘 수 있을지. 아이들은 아저씨 곁을 맴돌며 말 대신 눈빛으로 부탁을 보낸다. “아저씨, 오늘… 그거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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