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고향의 따뜻한 품속을 안고 살아간다

한국에서 살 때의 이야기다. 내가 젊은 시절 살던 곳은 대구 인근 달성군 논공이라는 동네이다. 한때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지만 어느 순간 광역시의 품으로 들어가 급격히 변한 동네이다. 지금은 달성공단이 들어서 공단 지역으로 변했지만 그 일대엔 여전히 견훤과 궁예가 전쟁을 치렀다는 흔적이 이름으로 남아 있다. 파군제, 청천, 반야월, 안심, 대덕산 등 그 지명을 불러 보기만 해도 오래된 시간과 사람들의 숨결이 되살아나는 듯한 곳이다. 두 전직 대통령의 생가가 있고, 한때 박근혜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동네라는 사실도 이곳의 특이한 운명을 말해 준다.

주변에는 팔공산과 유가사, 자연휴양림, 서원, 석빙고, 온천, 골프장, 낙동강변 휴양지까지 생각보다 많은 풍경이 흩어져 있다. 밤이면 자동차 영화관에서 무료 상영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작은 공업도시였지만 인구 1만 5천 명 남짓한 동네에 기반 시설은 놀라울 만큼 잘 갖춰져 있다. 사회체육시설은 무료로 개방되고, 도로와 공공서비스는 일본보다 낫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있던 나에게 그 변화는 신기함이자 자랑이었다. ‘한국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한다.

특이한 또 한 가지는 다양한 음식점이 많다는 사실이다. 공장 지역이라 맞벌이 부부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외식 문화가 자리 잡은 것 같다. 어느 집이든 자신만의 맛을 내세우는 간판을 하나씩 걸고 있다. 활기찬 골목을 지날 때면 마치 사람들의 삶이 부엌에서 식탁으로 이어지는 뜨거운 숨결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동네 사람 중 약 30%가 외국인이라는 사실도 놀랍다.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이들이다. 그들을 보며 ‘이곳 역시 누군가의 타국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간혹 조금은 어수선한 모습도 보이지만, 문득 ‘혹시 한국 사람들도 외국에서 저렇게 보이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나를 돌아보게 한다. 고향은, 이렇게 타인을 비추어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기도 하다.

처음 일본에 와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과일나무에 달린 열매를 그대로 두고 바라만 보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도 생활이 넉넉해지면서 시장에서 좋은 과일을 사 먹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길가의 열매는 손대지 않는 모습이다. 젊은 시절 영국 유학 때 보았던 풍경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게 자리 잡은 것 같다. 마음만 먹으면 사시사철 싱싱한 과일과 채소를 구할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이다. 그 사실이 괜히 뿌듯했다.

멀리서 바라보면 팔공산과 비슬산이 든든히 서 있고, 그 아래로 유적과 축제가 이어지는 도시 대구에서도 장년기를 보냈었다. 비슬산의 참꽃 축제, 반딧불 축제, 얼음 축제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물들이곤 했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는 특유의 지형처럼 대구는 언제나 사람을 품어 안는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행정구역이 바뀌고 명칭이 달라져도, 내 주소 한 줄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남리’는 여전히 나의 삶을 증명해 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향을 생각한다. 그곳에서 보고 듣고 배우며 몸에 밴 습관과 마음의 온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때로는 세상이 낯설고 힘겨울 때, 문득 떠오르는 고향의 풍경 한 장면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고향은 마치 오래전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함이 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받은 온기와 숨결을 마음 깊이 간직하며 살아간다. 멀리 떠나 있어도, 세상이 변해도 사람들은 결국 고향의 따뜻한 품속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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