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장터에서 다시 만난 시간의 향기

내 고향 신산에는 아직도 5일장이 열린다. 끝 자리가 0과 5일이면 장이 선다는 사실은 달력을 보지 않아도 몸이 먼저 기억한다. 인근 고령에서는 2일과 9일에 장이 서는데 마침 오늘이 29일 고령장날이다. 외국에 살다가 모처럼 고향에 온 김에 새벽 6시에 일어나 장터로 향했다. 고령은 옛 가야 문화의 중심지다. 가야의 숨결이 곳곳에 남아 있고, 성주와 더불어 참외와 딸기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고장이다. 붉은 황토에서만 나온다는 고령토는 예로부터 그릇을 빚는 데 최고라 했고 지금은 지역 가야대학에서 연구가 이루어져 세라믹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고 한다. 강변 물놀이 축제와 국악 축제가 계절을 따라 이어지는 작지만 생동감이 가득한 동네이다.

상점들이 줄지어 자리잡고 있는 시장 거리, 각양각색의 양산이 길을 가로막고 있으며,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있는 모습

시장 입구의 느티나무 아래에는 노인들이 모여 옛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그 곁을 베트남에서 온 산업 연수생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느새 고향의 작은 도시들도 다양한 얼굴들을 품게 되었다. 변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 변화마저 장터의 풍경 속에서는 자연스러워 보였다. 노점마다 집에서 키운 채소와 과일이 정갈히 놓여 있다. 바구니에 담긴 열무, 막 따온 듯한 고추, 수박을 쪼개 놓고 단맛을 자랑하는 상인들. “발만 맞으면 천 원!”이라며 웃음을 터뜨리는 신발 가게, 태극기와 모자, 옷가지, 옻칠이 곱게 올라간 식판까지 장터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한꺼번에 펼쳐지는 곳이다.

장터를 걷다 보니 문득 오래된 기억이 문을 두드린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장터에 따라오던 날들이 있었다. 손바닥에 동전 몇 개를 꼭 쥐여 주던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건 네 몫이다. 네가 사고 싶은 걸 직접 골라 봐라.” 나는 그 돈으로 풀빵을 사 먹을지 사탕을 살지 한참을 고민했었다. 결정 하나에도 시간이 걸리던 그 시절 장터는 내게 처음 배운 경제학 교과서였다. 장터 한쪽에서는 닭들이 삶의 마지막을 아는지 소리를 질러대고, 돼지가 어디론지 끌려가며 버둥거렸고, 옆에서는 약장수가 목청을 돋우며 상표 없는 기침약을 흔들어댔다. 봄이면 모종을 팔고 여름이면 수박을 쌓아두었으며 가을이면 햇곡식이 자랑처럼 쏟아진다. 겨울 장날에는 솜옷을 꺼내 입고 군밤 냄새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손이 따뜻해진다.

다양한 플라스틱 신발이 쌓인 노점상으로, '골라 1000원'이라는 가격이 적힌 종이 signs가 놓여 있다.

시골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다. 어른들의 안부를 묻고 혼삿날을 정하고 논밭의 일손을 부탁하며 집안일과 마을 일이 함께 해결되던 마을의 회의장이었다. 곡식이 모자라면 쌀 한 되를 빌려주고 가을이 되면 웃으며 갚던 풍습 제삿날이 다가오면 장날마다 제수용품을 미리 챙겨두던 어머니의 손 명절 전날엔 소금, 간장, 기름까지 장터에서 모두 해결되었다. 장터는 부족함을 나누고 풍요를 함께 누리던 삶의 방식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남에게 손 내밀 줄도 알고, 잡아 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오늘 다시 걷는 고령 장터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었고 카드 단말기가 놓인 가게도 보인다. 하지만 흥정하는 웃음, 삶을 버텨내는 눈빛, 서로의 짐을 잠시 들어주던 손길은 변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 고향의 5일장은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세월이 서로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것을.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길 위에서 다시 마주 선 순간이었다. 장터를 뒤로하며 마음속에서 또 하나의 장이 열렸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그러나 분명하게 살아 있는 추억의 장.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마 이런 곳일 것이다. 사람 냄새가 남아 있고 삶이 이야기가 되어 흐르는 자리 그래서 고향은 멀리 떠나도 결국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조용한 힘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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