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 중에 만난 비

시장기 같은 허전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분명 하루를 잘 살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는 느낌. 무엇을 더 가져야 할지, 무엇을 더 이루어야 할지 몰라 그저 배고픈 사람처럼 두리번거리게 되는 시간. 그럴 때 나는 늘 쉴 곳을 찾는다. 낯익은 목소리에 이끌리듯 빈 뜨락에 나서 앉는다. 고운 숨결처럼 스며드는 새벽 공기를 마시며, 아무 말 없이 하루를 맞는다.

일본의 여름은 숨이 막히도록 후텁지근하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는 아직도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우산을 준비할 틈도 없이 퍼붓는 빗줄기, 금세 젖어버린 옷자락, 축축한 공기. 이국에서의 삶은 그렇게 예고 없이 나를 시험하곤 했다. 그러나 내게는 한결같이 평화를 건네는 곳이 있다. 후지산 근처의 산자락.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그곳은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말없이 나를 받아준다. 처음에는 두려움이 더 컸다. 한밤중까지 몰아치는 빗소리에 선잠을 깨기도 했고, 정체 모를 이국의 어둠에 몸을 움츠리기도 했다. 낯선 땅, 낯선 언어, 낯선 공기. 그 속에서 나는 늘 조금 작아져 있었다. 하지만 비가 잠시 그치는 틈을 타 우거진 숲 사이의 작은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풀어졌다. 새 소리, 풀벌레 소리, 물소리, 나뭇잎 스치는 소리. 그 어느 것도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숲은 비교하지 않는다. 경쟁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어울려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이룬다.

그 안에 서 있으면 깨닫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을. 작은 풀꽃은 제 자리에서 품위를 잃지 않고 피어 있고, 우뚝 선 나무는 묵묵히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질퍽한 땅 위로는 곤충들이 바삐 자리를 옮기고, 경사가 급한 계곡에서는 수정 같은 물이 늘 같은 리듬으로 바위를 어루만지며 흐른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지만, 아무것도 멈춰 있지 않다. 황혼이 내려앉으면 구름은 베일처럼 산을 감싸고, 어둠은 더 깊은 침묵을 품는다. 이름 모를 벌레들이 불빛을 향해 날아들고, 감자와 옥수수를 삶는 구수한 향기가 지나가면 하루는 조용히 접힌다. 그렇게 또 하루가 완성된다.

나는 머리가 혼란할 때면 이곳을 찾는다. 오늘도 피정을 핑계로 이곳에 와 있다. 

호수와 주변 건물들이 보이는 풍경

살다 보면 마음속에 비가 내리는 날이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와 일들. 그럴 때 우리는 서둘러 비를 멈추게 하려 한다. 그러나 자연을 바라보면 알게 된다. 비는 그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지나가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두 잘 살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잘 산다’는 말의 의미는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편안함을, 어떤 이는 소유를, 또 다른 이는 명예와 권력을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많이 가질수록 지켜야 할 것도 많아지고, 높이 오를수록 떨어질까 두려워진다. 붙잡으려 할수록 마음은 더 바빠진다. 그렇다면 진정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잘 살지 않는다면 사는 것이 무슨 도움이 있으며, 잘 사는 것 또한 영원을 위해 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영원은 먼 훗날의 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점과 점이 이어져 선이 되듯, 지금 이 순간의 선택과 태도가 모여 우리의 삶을 이룬다. 오늘을 참되고 아름답게 살아내는 일, 주어진 하루를 부끄럽지 않게 엮어 가는 일. 그것이 곧 영원을 향한 삶이 아닐까.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여러 번 착각했다. 내 아이는 특별하다고, 남다르다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깨닫는다. 아이의 성장은 부모의 기대에서 조금씩 벗어나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교사로서 만난 수많은 부모들 중에는 “우리 아이만은 다르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는 특별해지려고 애쓸 때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때 더 건강하게 자란다. 가장 특별한 아이로 키우기보다, 가장 평범한 아이로 자라게 하는 용기. 비교 대신 존중을, 기대 대신 기다림을 선택하는 마음.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잘 사는 법’일지 모른다.

지금도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를 두렵게 했던 그 빗소리.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 비가 숲을 더 깊게 만들고, 계곡을 더 맑게 하며, 나를 더 단단하게 한다는 것을. 마음속에 비가 내릴 때, 나는 다시 이 산자락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앉아, 빗소리를 들을 것이다. 비는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워 새롭게 채우기 위해 온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으니.

시장기 같은 허전함이 속을 파고들던 날이었다.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는 듯하여 어디라도 기대고 싶어지던 때, 나는 낯익은 목소리에 이끌리듯 빈 뜨락에 나와 앉았다. 빗소리였다. 고운 숨결처럼 내리는 비와 함께 새벽을 맞으며, 나는 오래 잊고 지내던 나 자신을 다시 만났다.

일본의 여름은 늘 후텁지근하다. 공기마저 축 늘어진 채 사람의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그리고 예고도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는, 여전히 이방인 같은 나를 잠시 멈춰 세운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게는 후지산 자락 근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피정지가 있다. 동경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세상의 소음이 한 겹씩 벗겨지는 자리. 그곳은 복잡한 생각을 품고 찾아가는 나를 말없이 받아준다. 처음 몇 번은 밤새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을 설쳤다. 빗방울은 마치 낯선 언어처럼 지붕 위를 굴러다녔고, 나는 그 리듬을 해독하지 못한 채 이국의 어둠 속에서 뒤척였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그 소리가 두려움이 아니라 위로로 들리기 시작했다. 빗소리는 나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그저 “괜찮다”고,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내가 이곳을 사랑하게 된 것은 숲속의 작은 오솔길 때문이다. 비가 잠시 숨을 고르는 틈을 타 길을 나서면, 누군가 먼저 걸어 만든 흔적이 나를 맞는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난 그 길을 걷다 보면, 생각의 매듭이 하나씩 풀린다. 새 소리, 풀벌레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나뭇잎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한데 어우러져 숲속의 오케스트라를 이룬다. 나는 그 한가운데 서서, 지휘자도 아닌 청중도 아닌, 그저 하나의 음표가 된다. 작은 풀꽃은 제 키만큼의 하늘을 품고 피어 있고, 우뚝 선 나무는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킨다. 질퍽한 땅 위를 바쁘게 오가는 곤충들, 경사진 계곡을 따라 수정처럼 흐르는 물방울들. 누구도 서두르지 않고, 누구도 비교하지 않는다.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모두가 제 몫의 시간을 살고 있다.

황혼이 내려앉으면 구름은 베일처럼 산을 감싼다. 산은 깊은 숨을 들이쉬고, 풀벌레는 작은 불빛을 향해 날아든다. 별들은 늦은 속삭임으로 밤을 연다. 삶은 감자와 옥수수가 익어가는 구수한 향기가 어둠 속을 천천히 건너갈 때, 하루는 고요히 마무리된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나를 용서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에도 비가 내린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이, 설명할 수 없는 공허가 찾아오는 날이 있다. 우리는 그 비를 서둘러 그치게 하려 애쓴다. 하지만 어쩌면 필요한 것은 우산이 아니라 기다림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일부로서 조용히 앉아, 내 마음의 빗소리를 듣는 일. 그 침묵 속에서 비는 조금씩 잦아들고, 그 자리에 맑은 숨이 차오른다.

사람들은 ‘잘 산다’는 말을 자주 한다. 편안함을 말하기도 하고, 소유를 말하기도 하고, 명예와 권력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이 가질수록 지켜야 할 것이 늘어나고, 높이 오를수록 떨어질까 두려워진다. 참으로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다. “잘 살지 않는다면 사는 것이 무슨 도움이 있으며, 잘 사는 것 또한 영원을 위해서 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영원은 아득한 미래의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일지도 모른다. 점과 같은 오늘이 모여 선이 되고, 그 선이 다시 이어져 끝없이 흐른다. 지금 이 한 점을 진실하고 아름답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 영원을 사는 길이 아닐까. 빗방울 하나가 강을 이루듯, 오늘의 선택 하나가 내 삶의 물길을 만든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착각에 빠진다. 이 아이만은 특별하다고. 작은 말 한마디, 뜻밖의 행동 하나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러나 세상은 아이를 다시 평범함 속에 세운다. 어쩌면 성장이라는 것은 부모의 기대를 조금씩 내려놓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특별해지기보다 자기 자신이 되는 일, 그것이 더 어려운 길임을 우리는 뒤늦게 깨닫는다. 교단에 서서 만나는 부모들 가운데는 “내 아이만은 다르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아이를 가장 특별한 자리로 밀어 올리려 할 때, 아이는 오히려 설 자리를 잃는다. 평범한 자리에서 자기 몫의 햇살과 비를 맞으며 자랄 때, 아이는 비로소 단단해진다.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자기 속도로 걷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조용히 행복에 닿는다.

지금도 밖에는 비가 내린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작은 연못을 만든다. 나는 그 물결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오늘이라는 점 하나를,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자고. 비는 그치겠지만, 이 고요는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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