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이훈우 칼럼
당신은 여기 계시고, 저도 여기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습관적으로 성당엘 간다. 교직에 몸담으면서 ‘몸에 베여 습관화되도록 반복적으로 생활지도 해 주세요.’라던 교감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몸에 베여 습관적으로 지켜지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일요일 아침 눈이 떠지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성당을 가고 있으니…. 성당을 다니며 요한 23세 교황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은 한없이 고요해진다. 어느 날, 교황님이 보이지 않아 비서…
지나침은 부족함보다 못할 때가 있다
한국에서의 일이다. 어느 날, 국도를 신나게 달리다 배가 고파 도로변 휴게소 식당에 차를 세웠다. 간판에는 큼직하게 ‘기사님식당’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사님’이라는 말이 뭔가 생각을 하게 했다. 예전에는 ‘님’이라는 호칭을 임금이나 부모, 스승처럼 귀한 존재에게만 붙였다고 배웠다. 그래서인지 그 글자 속에는 늘 공손함과 존경의 기운이 배어 있었다. 그런데 그날, 휴게소의 간판은 나에게 이상하게도 존경보다는 마음 한켠이 어수선함…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그 사실은 너무도 분명해서 오히려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마치 영원히 오늘이 계속될 것처럼, 마치 내 손에 쥔 것들이 끝까지 나와 함께 갈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늙을 대로 늙었는데도 죽지 못한다면, 모든 것을 다 겪고도 떠나지 못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두려운 일은 아닐까요. 살아 있는 동안 가지려고만 하고, 이기려고만…
피정 중에 만난 비
시장기 같은 허전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분명 하루를 잘 살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는 느낌. 무엇을 더 가져야 할지, 무엇을 더 이루어야 할지 몰라 그저 배고픈 사람처럼 두리번거리게 되는 시간. 그럴 때 나는 늘 쉴 곳을 찾는다. 낯익은 목소리에 이끌리듯 빈 뜨락에 나서 앉는다. 고운 숨결처럼 스며드는 새벽 공기를 마시며, 아무 말 없이 하루를…
우리 선생님 (3)
설날을 맞아 모처럼 서울역을 찾았다. 보슬비가 잔잔히 내리던 광장에서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장면을 보게 되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老) 스승 앞에 중년의 신사 여럿이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리고 있는 보습이다. 의례도, 형식도 없다. 오직 세월 속에 차곡차곡 쌓아온 존경과 감사만이 담긴 큰 절을 드리고 있다. 당시 나는 교사 초년생이었는데, ‘어떻게 가르치면 저런 제자들을 남길 수…
우리 선생님 (2)
그날, 선생님은 벌을 받겠다고 하셨다 “야! 패스, 패스! 저쪽이 비었잖아!”. “9번이 6번을 막아야지!”. 아직 오전이지만 여름 땡볕은 이미 한낮처럼 뜨겁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시골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숨이 가쁜 줄도 모르고 핸드볼 연습에 열중이다. 그때는 몰랐다. 그 여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기억으로 남게 될 줄을. 6학년 때, 도시에서 멋진 선생님이 우리 학교로 부임해 오셨다….
무릎으로 기억하는 성당
가실성당/낙산성당 나는 유아 영세를 받았지만 사정이 있어 성인이 되고 다시 세례를 받았다. 낙산성당에서 6개월 동안 수녀님과 성경 공부를 하고 난 뒤 신부님의 평가를 통과하고서야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30년이 지나고 도쿄의 한인성당에서 견진 성사를 받아 신앙인으로서의 나를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낙산성당(가실성당)에 다니던 시절, 나는 그곳이 그렇게 오래된 성당인 줄 몰랐다. 1895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