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비가 계속되고 있다. 7월의 장마가 끝나고 나면 불볕더위가 이어져야 할 텐데, 계절의 법칙을 어긴 듯 지루한 비가 계속된다.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하늘의 리듬이 깨어진 탓인지 이상한 날씨가 마음을 불편하게 붙잡는다. 이렇게 비가 계속되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어릴 적 다니던 국민학교 때의 일들이 떠오른다. 내가 다니던 시골 학교는 의성군 단북면 신하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인면 신산과 맞닿아 있었는데, 신산이 더 큰 동네라 학교 이름은 ‘신산국민학교’였다. 주변 5킬로미터 내의 아이들이 걸어서 다니던 학교였다. 신하동을 중심으로 대제, 용산, 신기, 방까, 신산, 무릉, 하제까지 여러 동네의 아이들이 아침마다 모여든다.내가 1학년 입학할 때는 “나가자 신산 건아 600여 명아….”라는 가사의 교가를 불렀다. 하지만 세월은 빠르게 아이들을 데려가,3학년 때는 400여 명으로, 6학년 졸업할 즈음에는 200여 명으로 가사가 바뀌었다. 그리고 결국 그 학교는 20여 년 전 조용히 문을 닫고 말았다.

며칠 전, 오랜만에 빗속을 뚫고 학교를 찾아갔다. 운동장에는 누가 심었는지 참깨가 자라고 있었고, 해바라기를 가꾸던 실습장은 콩밭으로 변해 있었다. 건물은 아직 그대로였지만 안에 들어서니 빈 공간만 남아 있다. 운동장 끝자락의 우물은 말라 있었고, 교문 앞 기상공원에 서 있던 녹슨 풍향계만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바람과 전혀 상관없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눈을 감으니 6년의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핸드볼 선수 시절의 합숙 훈련, 책가방 없는 날로 정해진 자유학습의 날, 토끼몰이와 솔방울 줍기, 자갈 줍기와 풀씨(잔디씨)훑기, 실습장의 잡초 뽑기, 동네별 팀으로 나누어 운영되던 운동회와 졸업 학예회, 학교별 학력고사와 고전 읽기 대회, 소풍과 채변 검사, 용의 검사까지. 정부에서 무료로 나누어 주던 우유와 빵, 반공 웅변대회와 그림 그리기 대회, 연탄난로 위에 도시락을 데워 먹던 겨울, 난로 주변에 몰려 있다가 뒤에서 밀려 사고가 났던 일,밤이면 교장 선생님 사택에 모여 앉아 여로,전우,타잔을 보던 흑백 TV. 수없이 많은 기억들이 비처럼 쏟아진다.

그 시절, 비가 많이 오면 학교는 수업을 중단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큰 강을 두 세 곳은 건너서 등하교를 하기 때문이다. 다리라 해봐야 징검다리나 나무다리 또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콘크리트 다리뿐이었던 시절이었다. 비가 조금만 와도 강물이 불어서 건너기 위험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이미 공부할 마음이 없어진다.시골 아이들이라 강물에 휩쓸려 갈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학교는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몰랐다. 공부를 안 하고 일찍 집에 가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당연히 곧장 집으로 갈 리 없다. 비가 오면 농사일을 돕지 않아도 되니, 해가 저물 때까지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간다.비 오는 날 즐기는 놀이도 많다.친구집에서 콩을 볶아 먹기도 하고, 미꾸라지와 개구리, 뱀을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것을 인근 돼지 사육장에 팔아 생긴 돈으로 처음 나온 라면을 사 끓여 먹기도 하고 라면땅이라는 과자를 사 먹기도 했다.빗속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시냇물에서 물놀이를 즐기기도 했다.어린 시절의 학교를 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빗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는 ‘마이웨이’라는 노래가 들려온다.“지쳐 쓰러질 때까지 다시 시작해 보는 거야….” 비는 여전히 내리고, 학교는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지금도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비가 오는 날마다 나는 다시 그 운동장을 걷는다. 텅 빈 교실에서 웃음소리가 들리고 학교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나를 키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