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다가 그리웠던 고향 집에 잠시 들렀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변해버린 고향의 풍경들을 둘러보며 하나하나 눈에 담고 싶었지만 하늘은 무심하게 오늘도 장마의 긴 터널 속에 갇혀 있습니다. 10년 만에 들른 나를 시샘이라도 하는 걸까요. 아침잠을 깨우는 햇살이 반가운가 싶더니, 이내 하늘은 검푸른 빛으로 얼굴을 가리고 구멍이라도 난 듯 장대비를 쏟아붓습니다. 벌써 나흘째 계속되는 이 변덕스러운 비가 처음엔 참 얄궂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처마 밑에 앉아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어느덧 비 냄새 섞인 바람이 어린 시절로 나를 데려다 놓습니다.
세차게 내리는 비 사이로 들려오는 매미 소리는 애처로운 마음마저 듭니다. 저 매미는 8년이라는 긴 세월을 차갑고 어두운 땅속에서 견뎌냈을 겁니다. 드디어 빛을 보게 된 ‘우화등선’의 순간, 하지만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일주일 남짓입니다. 생의 가장 화려하고도 짧은 정점에서 짝을 찾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생명을 노래하는 저 소리. 매미에게는 이 비가 문제가 아닙니다. 비가 오든 천둥이 치든 지금 당장 울지 않으면 종족을 이어갈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절박하면서도 애처로운 저 울음소리는 타향살이 10년에 지친 내 등을 토닥이며 말하는 것 같습니다. ‘비가 온다고 멈추지 마라, 인생은 어차피 짧으니 더 뜨겁게 노래하고 부딪히라고’고.

빗소리는 이내 시골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변합니다. 농촌의 어린 시절 우리에게 비는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닙니다. 어른들에게는 농사일을 쉴 수 있는 ‘휴식’이었고, 우리에게는 즐거운 ‘놀이판’입니다. 디즈니랜드나 그 어떤 놀이동산보다도 재미있습니다. 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실개천으로 모여듭니다. 검정 고무신 앞코를 안으로 밀어 넣어 만든 ‘고무신 불도저’는 최고의 장비였습니다. 그것으로 흙을 밀어 올려 댐을 만들고, 호박잎 대롱을 꽂아 간이 물레방아를 돌립니다. 방동사니와 강아지풀을 엮어 만든 물레방아가 누구의 것보다 더 빨리 도는지 내기를 하던 그 즐거운 오후가 눈을 감으면 선명히 떠오릅니다. 내기에서 지면 벌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병정개미를 잡아 그 꽁무니를 빠는 것이었지요. 꽁무니에서 나오는 한방울의 개미산은 잠시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강렬하고 짜릿합니다. 가끔은 개미집인 줄 알고 잘못 건드린 땅벌 집 덕분에 수십 마리의 벌떼에 쫓겨 온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기도 했습니다. 거울 속 ‘우주인’이 된 모습을 보며 울고 웃던 그 순수했던 상처들이 이제는 훈장처럼 느껴집니다.
비 온 뒤의 식물들은 유난히 싱싱하고 산뜻합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앞산도, 높게만 보였던 뒷산도 비 갠 후의 맑은 공기 속에서는 바로 눈앞에 성큼 다가옵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버섯을 따러 뒷산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이치를 배웠습니다. 색깔이 화려하고 잘난 체하며 솟아 있는 버섯은 대개 독버섯입니다. 반면 색도 수수하고 모양도 볼품없이 다소곳이 숨어 있는 버섯들이 우리 몸을 살리는 보약이 되는 식용 버섯이지요. 사람의 됨됨이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겉모습만 화려한 사람보다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이의 소중함을 산은 이미 어린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때로는 억새풀에 살이 베여 쓰라린 통증을 겪기도 합니다. 촌놈이라 미끄러지는 법은 없었지만, 억센 풀들의 공격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특별한 약도 없던 시절, 그저 침 한 번 쓱 바르고 다시 산을 뛰어다니던 그 무모한 강인함이 지금의 나를 만든 근육이 되었습니다.

비가 더 거세지면 우리는 낚싯대를 챙겨 강으로 나갑니다. 흙탕물이 유입되면 물고기들의 먹이활동이 활발해진다는 것을 시골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손바닥만 한 붕어를 연신 낚아 올리다가, 그마저 지겨워지면 도랑으로 들어가 미꾸라지를 잡습니다. 발로 진흙을 짓이기며 미꾸라지를 몰아넣던 그 치열한 몸짓. 가끔은 깨진 농약병에 발을 베여 상처가 곪기도 했지만 그 모든 아픔조차 놀이의 일부이며 삶의 체험입니다.
일본에서의 10년, 그리고 잠시 들른 고향의 장마. 비는 여전히 창밖을 두드리고 있지만 이제 마음은 평온합니다. 각박한 도시 생활과 낯선 이국땅에서 나를 지탱해 준 진정한 힘은, 화려한 스펙이나 경제적 여유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비 오는 날 흙탕물 속을 천진난만하게 뛰놀던 그 시절의 ‘여유’와 ‘체험’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자연과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운 생명력은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든든한 밑거름이 됩니다. 비록 지금 우리 삶에 거센 장마가 찾아왔을지라도, 매미처럼 온 힘을 다해 노래하고 비 갠 뒤의 싱그러움을 기다릴 줄 아는 마음. 그것이 고향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