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신산의 추억

장마가 지났나 싶었는데 다시 사흘째 비가 내린다. 요즘 비는 참으로 기괴하다. 하늘이 뚫린 듯 번개를 동반해 무섭게 퍼붓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뚝 그치기를 반복한다. 매스컴에서는 벌써 낙동강 하류가 잠겼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비 냄새가 바람을 타고 실려 올 때면 나의 마음은 어느새 수십 년 전 ‘하늘 아래 끝 동네’였던 고향 신산(新山)으로 달려간다.

어릴 적 내 고향은 해마다 물난리를 겪었다. 네 살이던 어느 여름 마을 공동우물까지 물이 차 올라 온 마을 사람들이 뒷산으로 피난을 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낙동강 본류와 위수강이 만나는 안계평야의 끝자락 큰비가 오면 강물이 거슬러 역류했고 그 넓던 들판은 눈 깜짝할 새 거대한 바다가 된다. 어른들은 한 해 농사를 망쳤다며 젖은 땅을 넋놓고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지만, 철부지 아이들에게는 신비로운 놀이터가 된다. 난생처음 보는 바다가 집 앞까지 배달된 셈이었으니까. 아이들은 커다란 플라스틱 ‘방티(함지박)’를 급조해 배를 만들고 밥주걱을 노 삼아 망망대해를 저어 나간다. 상류에서 떠밀려온 참외와 수박을 건져 올리고 운이 좋은 날엔 물에 떠내려오는 닭이나 새끼 돼지, 심지어 주인이 잃어버린 돈주머니까지 낚아채기도 한다. 국민학교 5학년이 되어서야 처음 전기가 들어올 만큼 외딴곳이었던 나의 세상은 뒷산 너머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그 순수함 자체였다. 그저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서 마냥 즐거워 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물이 차오르면 어른들은 산허리 바윗돌에 눈금을 그으며 물의 높이를 쟀고 아이들은 물이 줄어들기만을 기다리며 환호를 내질렀다. 드디어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마을은 모두가 어부가 된다. 영리한 잉어들이 강 본류로 돌아가기 전 길목을 지키는 ‘그물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6학년 때였던가 나도 처음으로 그 무거운 그물을 손에 쥐었다. 가슴팍까지 차오르는 급류 속에서 어른 팔뚝만 한 굵기의 그물을 버티며 서 있는 일은 어린 나에게는 목숨을 건 사투와도 같았다. 아랫배에 그물을 대고 물살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그물을 툭 치는 묵직한 전율이 전해진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잉어보다 빠르게 그물을 들어올려야 한다. 밤새 물결과 씨름한 끝에 대래끼(망태기) 가득 물고기를 채워 돌아올 때의 그 벅찬 성취감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훈장이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돌아온 아침, 아버지는 대견한 듯 나를 바라보며 갓 잡아 온 ‘주리기(새끼 잉어)’를 회 떠서 소주 한 잔을 곁들이신다. 그 한 점의 회는 내륙 지방 사람들에게 최고의 성찬이자 아들이 어엿한 남자로 성장했음을 인정하는 증표이기도 했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의 평야 풍경, 논과 수련 넝쿨이 자생하고 있는 모습, 배경에는 산이 있는 전경

물이 더 빠져 논바닥이 드러나면 완전히 아이들의 세상이 된다. 반두를 들고 고인 물속에서 붕어와 메기, 뱀장어를 쫓아다닌다. 큰물이 지나가고 나면 온 동네는 한 달 내내 물고기 비린내로 풍성해진다. 꾸덕꾸덕하게 말린 물고기에 고추장을 발라 화로에 구워 먹던 맛, 미나리와 콩나물을 듬뿍 넣어 자작하게 끓여낸 잉어찜의 향기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코끝에 남아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소중한 조각들을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고향의 기억은 그저 하나의 조각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밑바닥을 지탱하는 거대한 뿌리와 같다. 수해의 아픔조차 넉넉한 인심과 아이들의 웃음으로 덮어버리던 그 곳.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다시 그 시절 안계평야의 ‘바다’를 꿈꾼다. 밥주걱 노를 젓던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던, 투박하지만 포근했던 어머니의 품 같은 나의 고향, 신산의 여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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