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 이름에 숨은 정치조선 왕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태조·세조·선조·인조·영조·정조처럼 ‘조(祖)’로 끝나는 왕이 있는 반면, 세종·문종·성종·중종·숙종·경종·효종처럼 ‘종(宗)’으로 끝나는 왕도 있다.우리가 흔히 부르는 세종이나 세조는 왕이 살아 있을 때 사용한 이름이 아니다. 왕이 죽은 뒤 종묘에 신주를 모시면서 붙인 ‘묘호(廟號)’다.그렇다면 조와 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전통적으로는 ‘공이 있는 임금은 조, 덕이 있는 임금은 종’이라는 설명이 사용됐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도 인조의 묘호를 결정하면서 대신들이 “공이 있는 분을 조라 하고 덕이 있는 분을 종이라 하는 것이 고례”라고 설명한 기록이 남아 있다.하지만 실제 조선의 묘호는 이런 원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조와 종을 사용하는 데 반드시 일정한 원칙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대체로 나라를 처음 세우거나 왕조의 정통을 다시 일으킨 군주에게 ‘조’를 붙이고, 정상적인 왕위 계승을 통해 왕통을 이어간 군주에게 ‘종’을 붙이는 경향이 있었다.대표적인 인물이 태조 이성계다. 새로운 왕조를 창건했기 때문에 ‘태조’가 됐다.그렇다면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평가받는 세종은 왜 ‘세조’가 아니라 ‘세종’일까.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와 종을 단순한 ‘왕의 성적표’로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세종은 태종의 뒤를 이어 정상적으로 왕위를 계승했고 왕조의 제도와 문화를 발전시킨 군주였다. 훈민정음 창제와 과학기술 발전, 국방 강화, 제도 정비 등 엄청난 업적을 남겼지만 새로운 왕조를 창업하거나 끊어진 왕통을 다시 세운 군주는 아니었다.따라서 ‘종’이라는 묘호가 낮은 평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종의 ‘세(世)’ 자체가 왕조를 빛낸 군주에게 부여된 매우 높은 의미를 가진 글자였다.반면 세조는 상황이 달랐다.세조는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으로, 1453년 계유정난을 통해 김종서 등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한 뒤 1455년 조카 단종에게서 왕위를 넘겨받았다. 이후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 통치체제를 정비했다.세조가 1468년 사망하자 묘호를 정하는 과정은 국가적 정치 행위였다. 예종 즉위년 조선왕조실록에는 신숙주가 왕의 시호는 몇몇 대신만 결정할 수 없다며 2품 이상 대신들과 함께 논의할 것을 요청한 기록이 있다. 이후 조정은 그의 묘호를 ‘세조’로 결정했다.이는 묘호가 단순히 생전의 업적을 평가해 자동으로 결정되는 명칭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왕이 죽은 뒤 후계 왕과 대신들이 전왕의 통치를 어떻게 규정하고 왕조의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를 부여할 것인지 논의해 결정한 결과였다.조선 후기로 갈수록 이러한 정치적 성격은 더욱 뚜렷해졌다.선조는 처음에는 ‘선종(宣宗)’이었으나 광해군 때 ‘선조’로 바뀌었다. 영조 역시 처음 받은 묘호는 ‘영종(英宗)’이었지만 고종 때 ‘영조’로 추존됐다. 정조도 처음에는 ‘정종(正宗)’이었다가 대한제국 시기인 1899년 ‘정조’로 바뀌었다.후대의 정치적 평가에 따라 ‘종’이 ‘조’로 격상되는 일이 실제로 있었던 것이다.따라서 ‘조는 훌륭한 왕, 종은 그보다 못한 왕’이라는 식의 설명은 정확하지 않다.세종이 ‘종’이고 세조가 ‘조’라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오늘날의 역사적 평가와 묘호의 조·종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묘호에는 왕의 업적뿐 아니라 왕위 계승 방식과 왕조의 정통성, 국난 극복에 대한 평가, 후계 왕의 정치적 필요, 당시 집권세력의 역사 인식까지 복합적으로 반영됐다.결국 조선 왕의 이름 끝에 붙은 한 글자 ‘조’와 ‘종’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그 한 글자에는 죽은 왕을 후대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그리고 새로운 권력이 앞선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고 정당화할 것인지에 대한 조선 정치의 논리가 담겨 있다.
세종은 ‘종’, 세조는 왜 ‘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