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미군이 일본 나가사키 상공에 두 번째 원자폭탄 ‘팻맨(Fat Man)’을 투하했다. 히로시마에 첫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 불과 사흘 만이었다.
앞서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에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에 사용된 원자폭탄 ‘리틀보이(Little Boy)’가 투하됐다. 도시 중심부가 순식간에 초토화됐으며 폭발과 화재, 방사선 피해가 이어졌다.
히로시마시는 원폭 투하 이후 1945년 말까지 약 14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확한 희생자 수는 지금도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히로시마 원폭으로 ‘30만명이 희생됐다’고 단정하기보다는 1945년 말까지 약 14만명이 사망했고 이후 방사선 후유증 등으로 피해가 장기간 계속됐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나가사키에서도 원폭 투하 직후 엄청난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일본 정부와 나가사키의 원폭 관련 기관들은 현재까지도 피폭자들의 증언과 기록을 보존하며 원폭 피해 실상을 알리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희생자는 일본인만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에 거주하거나 노동하고 있던 조선인들도 두 도시에서 원폭 피해를 입었다. 일본 정부 역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된 뒤 한국 등 해외에 거주하게 된 피폭자 지원 문제를 한일 간 현안으로 다뤄왔다.
특히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일본에 건너갔거나 동원된 조선인들이 원폭 피해자가 됐다는 점에서 한국인 원폭 피해는 식민지 지배와 전쟁, 핵무기의 비극이 중첩된 역사로 평가된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6일 뒤인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국의 포츠담선언 수락을 국민에게 알렸다. 한반도에서는 이날을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광복의 날로 기억하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인 동시에 핵무기가 인간과 도시를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역사적 비극으로 남았다.
81년이 지난 2026년에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는 원폭 희생자를 추모하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도 원폭 피해의 기억과 피폭자 증언을 다음 세대와 국제사회에 전달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
역사를 기억하는 이유는 특정 국가나 국민을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전쟁이 평범한 시민에게 어떤 결과를 남기는지 기억하고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 그리고 8월 15일 광복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전쟁의 종결과 해방이라는 의미와 함께 전쟁과 식민지배, 핵무기가 남긴 희생을 동시에 되돌아보게 한다.
결국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의 증오를 현재로 가져오는 일이 아니라 과거의 비극을 통해 미래의 평화를 지켜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