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국 유학기 4

영국에서의 공부는 월요일 아침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나는 솔직히 말해 ‘굿모닝’과 ‘하우 아 유’를 백 번쯤 반복하다 끝나는 영어 회화식 공부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첫날부터 일정표는 전투적이었다. 실습, 토론, 현장 활동, 문화 체험, 공연, 인터뷰, 팀 프로젝트까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게다가 스텝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우리를 기다려온 사람들처럼 친절했다. “불편한 건 없으세요?” “점심은 괜찮으셨어요?” “오늘 활동 재미있으셨죠?” 별것 아닌 말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였다. 사람은 거창한 친절보다 ‘나를 신경 써주고 있구나’라는 느낌에 더 감동받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공부는 크게 language development, aspects of english language teaching, educational visits, cultural studies 그리고 저녁 프로그램인 evening events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이름은 거창했지만 실제 수업은 살아 움직였다. 영국식 회화는 물론이고, 식당에서 주문하는 법, 처음 만난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법, 심지어 영국식 예의와 농담까지 몸으로 익히게 했다. 특히 Sue Lavender 교수의 language development 시간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나는 당시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영어라는 언어는 이상하게도 한국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입은 얼고, 귀는 막히고, 머리는 하얘진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되자 Sue 교수는 말했다. “틀리는 건 괜찮아요. 말을 안 하는 게 더 큰 문제예요.” 그 말 한마디가 참 이상했다. 영어보다 내가 먼저 풀렸다. 그녀는 매 시간 새로운 자료와 활동을 들고 왔다. 종이 몇 장, 카드 몇 개, 짧은 상황극 하나로 교실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그동안 영어권 사람들을 너무 얕봤던 건 아닐까?’ 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조상 잘 만나 영어 하나로 먹고사는 사람들이겠지.’ 그런데 아니었다. 그들은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수업 하나를 위해 끝없이 준비하고, 학생 한 사람의 반응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쉽게 얻은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느꼈다.

문화 수업(cultural studies)은 더욱 흥미로웠다. Felicity Hughes 교수는 신문을 활용해 영국 사회를 읽게 했다. 단순히 “영국은 이런 나라입니다”라고 설명하는 대신, 직접 거리로 나가 주민들을 인터뷰하게 만들었다. “영국에서 가장 큰 사회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영국 문화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다들 머뭇거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설픈 영어와 손짓 발짓이 뒤섞인 국제적 몸개그가 시작됐다. “Excuse me… 인터뷰… 오케이?” “아하! 코리아?” “Yes! Korea! Very handsome teacher!” 마지막 문장은 내가 한 말이다. 물론 상대방은 웃기만 했다. 그렇게 만든 벽신문은 서툴렀지만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당시 영국에서도 집 없이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영국은 내게 오래도록 ‘해가 지지 않는 나라’, 품격과 여유의 상징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도 집값 걱정을 하고, 일자리를 고민하고, 삶의 무게에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했다. 서울이든 런던이든, 인생은 늘 월요일과 생활비 사이 어디쯤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Joan Palmer 교수의 수업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그는 말했다. “교사는 배우여야 합니다.” 처음엔 웃었다. 그런데 수업을 듣다 보니 그 말이 무서워졌다. 그는 칠판 앞에만 서 있지 않았다. 걷고, 웃고, 표정을 바꾸고, 목소리를 낮췄다가 갑자기 높이며 학생들을 빨아들였다. 교실은 강의실이 아니라 무대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오래된 내 습관들을 떠올렸다. 익숙함이라는 이름으로 쌓여가던 게으름, 반복되는 수업 속에서 무뎌진 열정들. 교직 생활이 길어진다는 건 경험이 쌓이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감동을 잃어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어느 밤, 동네 펍(pub)에서 한국 대기업 직원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해외 파견 근무 중이라는 그들은 맥주잔을 앞에 두고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처절한 생존이 숨어 있었다. “살아남으려면 버텨야죠.” 그 짧은 말이 오래 남았다.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머물던 곳은 영국 남부의 작은 해변 도시 ‘사우스엠프턴(Southampton)’이다. 휴일이면 사람들은 바닷가에 누워 햇빛을 즐겼다. 영국 바다는 생각보다 차가웠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놀라울 만큼 따뜻했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바다만 바라봤다. 그 여유가 참 부러웠다.

나는 휴일마다 마을 골목을 돌아다녔다. 돌담 사이로 피어난 꽃들, 오래된 벽돌집, 작은 카페, 정성껏 가꾼 정원들을 구경하며 조금씩 영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해갔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정원 문화였다. 대부분의 집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사람들은 쉬는 날이면 묵묵히 꽃을 다듬고 잔디를 깎았다. 그 모습은 마치 삶을 천천히 닦아내는 의식처럼 보였다. 그중에서도 내 눈을 사로잡은 꽃이 있다. 양귀비였다. 강렬한 붉은색은 낯설 정도로 선명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웠기에 나는 한참을 바라봤다. ‘저렇게 아름다운 꽃이 왜 위험한 꽃이 되었을까.’ 문득 사람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너무 강렬해서 오해받는 존재들이 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영국과 일본은 참 많이 닮아 있다. 섬나라라는 점뿐 아니라, 작은 삶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비슷하다. 휴일이면 정원을 가꾸고, 작은 가게에서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오래 대화를 나누고, 과일나무 열매를 함부로 따먹지 않고 그냥 바라보며 계절을 즐긴다. 공공시설은 웅장하지만 개인의 생활은 검소하다. 문화와 전통을 지나칠 만큼 소중히 여긴다. 아마 일본은 개화기 시절 영국을 많이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섬나라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는 어떤 삶의 정서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영국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사람을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금씩, 나 자신도 배우고 있었다. 낯선 나라에서의 공부는 영어 공부가 아니라 결국 ‘사람 공부’였다. 그리고 그 공부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영국 유학기 5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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