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도시락

눈 덮인 산자락 위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퍼져 나가던 날이었다. ‘여기! 여기로 몰아!’, ‘선생님! 선생님 쪽으로 갔어요!’. 숨을 죽인 채 서 있던 선생님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상체만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토끼가 마치 스스로 길을 잃은 듯, 선생님의 발밑으로 파고들어 웅크린 것이다. 그리고 번개처럼 허리를 숙인 선생님의 손에 잡혀버렸다. 그날의 놀라움은 단순한 사냥의 성공 때문만이 아니었다. 도시에서 온 젊은 선생님이, 우리보다 더 자연과 가까운 몸짓으로 토끼를 품어 안았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분이 오래도록 운동선수로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에게 더 깊이 남은 기억은, 토끼를 잡던 손이 아니라 이후 우리를 이끌어주시던 정성이었다. 시골 학교에서 핸드볼부를 만들고, 밤낮없이 함께 뛰어주던 그 손. 그건 단순한 체육 지도가 아니라, 우리 삶을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밀어 올려 주는 손길이었다.

겨울이면 교실에는 난로가 놓였다. 조개탄이 타오르는 냄새, 연통을 타고 흐르던 연기, 그리고 그 주위에 모여 앉은 아이들의 온기가 교실을 채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는 부서진 탄을 물에 개어 더 잘 타게 만들 줄 알았고, 장작이 떨어지면 함께 산으로 올라가 솔방울을 주워 왔다. 그 모든 것은 배움이었다. 교과서 밖의 배움. 살아가는 방법을 몸으로 익히던 시간. 난로 위에는 양철 도시락들이 층층이 쌓인다. 당번은 타지 않게 이리저리 바꿔주고, 우리는 그 곁에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따뜻한 밥 냄새 속에서 웃고 떠들던 그 시간은, 가난했지만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의 우리는 서로의 온기로 충분히 부자였다. 하지만 그 시절은 따뜻함만큼이나 위험과도 가까이 있었다.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던 난로, 장난처럼 오가던 끓는 물,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마음. 어느 날, 그 작은 장난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창가에 기대 있던 친구의 등에 장난삼아 부은 뜨거운 물. 그 아이는 다음 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한참 뒤에야 큰 상처를 안고 다시 나타났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그 일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 그리고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어린 날의 무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는지.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던진 장난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이후로도 우리는 수없이 위험한 순간들을 넘겼다. 얼음 위에서 불을 피워 놓고 둘러 앉아 놀다가 얼음이 깨져서 그 밑으로 빨려 들어가던 날, 낫을 들고 장난을 치다가 크게 손을 다치던 날, 겁 없이 작두를 사용하다가 손가락이 날아가던 날, 심한 물놀이로 쥐가 나서 숨이 끊어질 뻔했던 날들. 지금 돌아보면,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질 만큼 위태로운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나는 이제 먼 타국의 거리에서 그 시절을 떠올리고 있다. 도쿄 신주쿠의 한 켠, [학교가자]라는 이름의 작은 식당에서 양철 도시락에 담긴 밥 위에 얹힌 계란 후라이. 뚜껑을 닫고 힘껏 흔들면 비빔밥이 되는 그 단순한 방식 속에서 나는 멈춰 서게 된다. 난로 위에 올려두었던 도시락. 쉬는 시간마다 몰래 열어보던 설렘. 친구들과 나눴던 웃음.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기억 하나.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따뜻했던 기억은 가슴을 데우고, 아픈 기억은 마음을 조용히 무너뜨린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삶인지도 모른다. 빛나던 순간과 후회가 함께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나는 가끔 그 아이를 떠올린다. 이름을 부르지 못한 채, 그저 마음속으로만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고 있니.’. 대답은 들을 수 없지만, 그 물음 하나만으로도 나는 여전히 그 시절 한가운데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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