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영 칼럼05> Top-down 방식의 진로 설계

Top-down 방식의 진로 설계

어릴 적 시골 친구들은 꿈을 묻는 선생님에게 대통령, 선생님, 과자공장 다니기 이렇게 세 가지가 꿈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당시에는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보고 듣는 직업이 대통령뿐이었고, 매일 만나는 분이 선생님이었기에 이 두 직업이 절대적이었다. 과자공장 취직이 꿈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반영하고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다.

진로진학상담교사가 되어 수천 건의 상담 사례 중 가장 안타까운 경우가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학생과 상담할 때이다. 주변의 직업이 너무 많아서 정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풍요로운 환경으로 인해 절실함이 없어서일까? 이렇게 꿈이 없는 학생들을 진로 유예형이라고 하는데, 진로 유예형은 대략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아직 진로가 유보적인 경우와 실제로 꿈을 정하지 못하거나 아예 꿈에 관심이 없는 진로 포기형이다.

진로 확정형이든 진로 유예형이든 진로 상담에 임하는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다루는 내용이 있다. <하고 싶은 일>과 <좋아하는 일>, 그리고 <잘하는 일>에 대한 생각 열기로 상담을 시작한다. 야구 선수 시절의 마이클 조던과 댄스 가수로서의 장윤정의 사진을 (일부러 작게 하여) 보여주고 누군지 맞추어 보게 한다. 그러고 나서 농구 황제로서의 마이클 조던의 모습과 사진이 또렷이 나온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트로트 가수로서의 장윤정 사진을 보여준다. 천하의 마이클 조던도 자신이 하고픈 일인 야구에서는 1년간 마이너리그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절감해야 했고, 장윤정도 자신이 원하여 데뷔했던 댄스 가수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즉 이들은 좋아하거나 하고픈 일에서는 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결국,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것이다. 마이클 조던의 경우 야구는 실제로 본인이 원했다기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원했던 직업이다. 굳이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효도형 직업 선택이었다. 농구 황제로서의 엄청난 연봉을 포기하고 새로운 직업에 도전한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부모님과의 진로 갈등을 겪는 경우 좋은 사례가 된다.

이제 다시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일과 하고픈 일, 그리고 잘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특히 일반고의 남학생들 중에 운동 또는 게임을 지나치게 좋아하여 공부를 전폐하고 운동과 게임만 하는 학생들이 있다. 잘한다는 개념과 남보다 잘하는 수준과 개념이 다르다. 직업의 관점에서 잘한다의 의미는 그 직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원수 안에 들어야 한다. 즉 그 직업에서 선발하는 인원수 안에 들 만큼 잘하는 게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거나 하고픈 일들은 결국 직업이 아닌 취미여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취미에 목숨 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좋아하거나 하고픈 일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 직업에서 요구하는 인원수 안에 들도록 자격과 조건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하고픈 일을 찾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탐색하는 과정이 진로교육이다.

물론 능력만 있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대학 신입생의 60% 정도가 본인의 전공 선택을 후회한다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직업에 본인의 전공이 도움이 된다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기업 취업생의 20% 정도가 취업한지 1년도 안되어 취업을 후회하여 새로운 직업을 찾아 방황하기도 한다. 대졸자의 상당수가 전문대에 재 입학하는 유턴 학생의 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성적만으로 대입에 올인하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각급 학교에 진로와직업이라는 교과목이 생겼고, 진로진학상담교사 제도가 도입되었다.

진로 및 직업 상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적이 아닌) 원하는 직업인이 되기 위한 자격, 조건, 성격, 능력, 직업 가치관 등을 알아보게 한다. 가령 영어 교사가 되고 싶다면 영어 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영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영어교육과 등 영어 관련 학과에 진학해야 한다. 원어민급 실력이 있어도 교사 자격증은 교사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반면 예체능 관련 직업들은 대부분 자격이나 조건보다는 능력이 최우선 조건이다. 이들 직업은 때로는 대학 진학이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즉 자격 조건보다 능력이 우선시되는 직업이 있는 것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학생 중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이 꽤 많다.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외국에 선수를 소개할 만큼의 어학 실력이 있어야 하고, 잘못된 계약으로 인한 소송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법률 지식 또한 중요한 자질임을 알려주면 공부를 싫어하면서 운동을 좋아는 학생들에게는 경종을 울리는 상담이 된다.

본인의 경우 영어가 좋아서 영어 교사가 되었다. 학생들에게 지금은 평생의 직업이 될 만큼 좋아했던 영어보다 더 좋아하는 게 생겼는데 무엇일까? 하고 물어본다. 평생의 직업이 될 만큼 좋아했던 영어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것 또한 직업이 될 수 있는 건 아닐까? 아니다. 50세가 넘어서 시작한 배드민턴은 내가 아무리 좋아하고 하고 싶은 운동이라 할지라도 결코 직업이 될 수는 없다. 만일, 배드민턴이 나의 직업이 된다면 스트레스로 인해 암 덩어리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취미로 즐길 때 좋은 것이다. 취미에 목숨 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또한 본인이 교사가 되기 이전의 직장에서 교사로 전직을 하니 급여가 60%로 줄어들었다. 이 경우 만일 본인의 직업가치관이 경제적이 이유가 컸다면 결코 직업을 바꿀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전직을 하니 교사라는 직업이 너무도 감사하고 보람이며 행복했다. 즉 나의 직업가치관은 경제적 풍요라기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람에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직업 선택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사항들로 직업가치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고 탐색하다보면 희망 직업을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재 원하던 직업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능력을 요하는 직업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인 경우도 있다. 그만큼 직업가치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진로 선택 관련 갈등 유형의 학생에게는 우선 순위 전략을 제시한다. 가령, 약사와 생명공학자 중에서 갈등하고 있다면 약학과 진학을 추천한다. 약사 자격증이 있는데, 생명 공학자가 되고 싶으면 진로 변경에 크게 무리가 없다. 반면 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그제서야 약사가 되고 싶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언젠가 수학을 전공하여 은행원이 되고 싶은 학생이 있었다. 수학과와 수학교육과 중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때만 해도 학생은 교사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 하여 수학과를 추천했다. 앞으로는 수학이 4차 산업 혁명시대의 꽃이 되리라는 전망이 워낙 강할 때였다. 그런데 이 학생은 결국 수학교사가 되었다. 만일 수학교사를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었더라면 당연히 수학교육과를 선택했어야 했고, 훨씬 수월하게 수학교사가 되었을 것이다. 수학교사가 되기 위해 힘든 과정을 겪는 제자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진로 우선순위 전략이 중요한 사례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훨씬 더 훌륭한 청출어람형의 제자가 되리리 믿고 성원한다.

이렇게 꿈 혹은 진로를 먼저 설정하고 그 직업을 이루기 위한 자격, 조건 등 도달 경로와 그 직업인에게 요구되는 성격, 자질, 가치관 등을 탐색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지, 그릭 그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학교에서는 어떤 과목을 선택하여 수강하고, 학생부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알아보는 진로 탐색을 top-down 방식의 진로 설계라고 한다. (이러한 포맷을 제공한 와이즈멘토에 감사를 전한다.) 남을 딛고 앞서가는 경쟁적 구도의 대입이 우선시 되는 시대를 뒤로 하고,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곧 학교 생활이고, 행복한 세상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학생들의 학교 생활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댓글 남기기

EduKorea News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