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 학교 운동장, 먼지를 일으키며 핸드볼을 연습하는 아이들의 열정 속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대도시에서 부임해 온 젊은 총각 선생님은 마치 큰형님처럼 시골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셨습니다. 핸드볼을 가르쳐주고, 스카우트 활동을 함께 하며 아이들에게 꿈과 가능성을 심어주셨습니다. 주머니를 털어 핸드볼 부를 운영하고 선수들에게 간식까지 챙기셨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부모처럼 따랐고 선생님은 아이들의 존경을 받으며 그들의 삶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어느 날 핸드볼 부 자율 연습으로 먼 산까지 체력 훈련을 나갔던 아이들은 돌아오는 길에 들판의 오디 열매에 마음을 뺏겨 뽕나무 밭으로 들어갔습니다. 달콤한 오디 맛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말았습니다. 늦은 오후 학교에 돌아왔을 때 걱정스럽게 기다리던 선생님은 무언의 꾸지람으로 아이들을 반성시켰습니다. 선생님은 당신이 잘못 가르쳤다며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주장에게 당신의 종아리를 때리라는 말씀에 주장은 물론이고 아이들 모두 당황과 놀람 속에서 진심으로 반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헌신적이고 따뜻한 지도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을 돌아보며 성장했습니다.
또 하나의 여름밤 추억 중에 는 수박 서리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미리 주인과 합의를 해놓고 우리들에게 스릴과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 수박 서리를 지시하여 아이들에게 짜릿한 경험을 선사해 주셨습니다. 서리한 수박을 벌거벗은 채로 강물 속에서 나누어 먹으며 웃음꽃을 피웠던 그날 밤의 추억은 아직도 잊지 못할 기억으로 마음속 깊이 남아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학교는 폐교가 되었지만 선생님과 함께했던 기억들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그때의 어린 제자가 지금은 선생님이 되어 그때의 선생님처럼 학생들에게 기억으로 남는 활동을 흉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고 선생님이 시도했던 예전의 교육 방식은 점점 이해받기 어려운 것으로 되어버렸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변화의 느낌을 되새기며 그리운 옛 친구들과 선생님을 떠올려봅니다.
교육의 진정한 의미와 그 시절의 따뜻했던 스승의 모습을 마음 깊이 새기며 오늘도 제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은 여전히 변치 않았으나 시대의 바뀜을 매일매일 실감합니다. 고래도 칭찬에는 춤을 춘다는 말이 있듯이 모두가 서로를 칭찬하며 기억에 남는 좋은 추억을 만들어가는 교육현장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야! 패스, 패스! 저쪽이 비었잖아!’
‘9번이 6번을 막아야지!’ 아직 오전이지만 여름의 땡볕이 숨을 가쁘게 만들 만큼 뜨겁습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시골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핸드볼 연습에 한창입니다. 그 시절, 6학년이었던 나는 대도시에서 갓 부임해 오신 잘생긴 젊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학교 기숙사에 머물며 밤낮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시골 아이들에게 스카우트 활동을 알려 주시고, 돼지 오줌통을 차고 놀던 우리에게 핸드볼이라는 운동을 가르쳐 주셔서 결국 군내 우승을 이루게 하신 잊지 못할 분이었습니다. 운동부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언제나 빠듯해서 시골 학교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지만 선생님은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며 팀을 꾸려 가셨습니다. 학교에서는 간식으로 아이들에게 빵을 모아서 주고, 육성회에서도 지원을 해 주었지만 활동비는 늘 부족했습니다. 당시 나는 7번을 달고 오른쪽 윙을 맡았고 팀의 중심이자 주장이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멀리서 손님이 오셔다며 오후 연습은 우리들끼리 자율적으로 연습을 하라는 지시를 하셨습니다. 자율 연습이란 왕복 30킬로미터 정도 되는 먼 산까지 달려갔다 오기로 했습니다. 줄지어 산을 향해 달리던 우리는 작은 개울을 건너고, 비탈길을 넘어 반환점에 도달했습니다. 당시 이웃 동네에서는 누에를 기리는 집이 많아 주변에는 뽕나무 밭이 많았습니다. 마침 뽕나무 열매인 오디가 익는 계절이라 주홍색으로 잘 익은 오디가 갈증으로 지친 우리를 유혹했습니다. 주인 몰래 오디 하나를 따 먹으니 세상에 이처럼 맛있는 것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잘 익은 오디의 맛은 천상의 맛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뽕나무 밭으로 들어가 오디를 따 먹기 시작했습니다. 입가가 붉게 물들고 윗도리가 주홍색으로 물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오디 맛에 빠져 즐기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4시를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3시까지 돌아오라 하셨는데, 서둘러 아이들을 모아 학교를 향해 달렸습니다. 5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하자 선생님은 교문 밖에까지 나오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아무 말 없이 이유를 묻지도 않으셨지만 입가와 옷에 묻은 붉은 오디 자국을 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셨겠지요. 얼마 뒤, 선생님은 주장인 나에게 회초리를 찾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체육복을 무릎까지 걷어 올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잘 못 가르쳤구나. 내가 벌을 받으마.’
‘주장, 때려라!’
‘예!?’ 나는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향해 선생님은 재차 말씀하셨습니다.
‘뭐 하니? 때리라고 하잖아!?’ 농담이 아님을 알면서도 어찌할 줄 모르고 그저 서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뭐 해!?’ 라며 엄하게 말씀하셨지만 나는 눈물만 흐를 뿐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습니다. 회초리를 어설프게 쥐고 눈물만 뚝뚝 흘리며 서 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선생님의 뽀얗고 반짝이는 종아리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시골 아이들 앞에서 반짝거리는 도시 청년의 순백의 다리로 우리에게 또 한 번 충격을 주었습니다.
‘선생님, 손님 가십니다요!’ 저 멀리서 들려오는 방호원 아저씨의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울고 있는 우리를 향해 무릎 꿇고 반성하라고 하시고는 손님을 배웅하러 가셨습니다. 그 일 이후로 우리는 선생님을 부모님 이상으로 따르고 믿게 되었습니다. 시골이라 방학 동안에도 집안일이 많았지만 부모님의 허락하에 우리는 교실에서 잠을 자고 선생님 집(학교 사택)에서 밥을 해 먹으며 합숙 훈련을 했습니다. 모든 것이 내게는 첫 경험이었습니다. 합숙 훈련, 친구들과의 식사, 집을 떠나 학교에서 잠을 자는 것 모두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여름밤, 훈련에 지친 우리를 선생님은 강너머 수박밭으로 이끄셨습니다. 조건은 각자 한 개 이상의 수박을 따 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옷을 홀딱 벗고 주인에게 잡혀도 미끄러지도록 몸에 진흙을 잔뜩 발랐습니다. 어둠 속에서 수박 서리를 하는 스릴에 가슴이 떨렸지만 우리는 약속된 장소에 모두 도착했습니다. 물속에서 수박을 깨뜨려 먹으며 마주보고 웃던 추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알고보니 선생님은 미리 수박밭 주인과 합의를 마친 후 우리에게 진짜처럼 서리를 시켜서 스릴을 선물하셨던 것입니다.
그 후 군내 핸드볼 대항전에서 시골 촌뜨기였던 우리 학교가 당당히 우승을 거두었고 그 전설적인 소문은 이웃 동네 사람들의 입에까지 오르내리며 학교 벽에 큼직하게 게시되었습니다. 몇 년 전 당시 선생님의 추억을 더듬으며 찾은 학교는 폐교가 되어있었고 어른 키만큼 자란 담뱃잎들만이 어지럽게 나를 맞았습니다. 크게만 보이던 운동장이 손바닥만큼 작아 보이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며 선생님의 흔적을 찾지 못한 채 아쉬운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83년 나는 국민학교(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대도시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스카우트 활동을 하며 야영도 하고 시골 학교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합숙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선생님을 흉내 내며 아이들과 겁 없이 어울렸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었는지 그런 행사를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믿기 어렵습니다. 시대는 변했고 교육 현장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옛날 나의 선생님처럼 나도 한때는 돈키호테 같은 선생님으로 겁 없이 아이들과 어울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도 했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선생님께 배운 다양한 비법들, 미리 합의해 두고 아이들을 속이며 즐겼던 수박 서리의 스릴,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던 귀신 놀이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오늘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스승의 진정한 가르침을 되새겨봅니다.
'선생님, 나의 선생님!'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을 되새기며 오늘도 옛 스승님을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젊은 교사 시절의 나의 제자들의 얼굴들을 그려봅니다. 에듀테크, 디지털 교과서, 코딩교육, 정보교육 등 지식정보처리 역량이라는 이름으로 앞으로만 달려가는 지금의 교육도 중요하겠지만, 어찌보면 윤리의식, 도덕교육을 강조하는 기본 소양 교육을 바탕으로 오히려 천천히 변해가는 교육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