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영칼럼 61> jky의 성경 이야기

– 오해와 진실은 종이 한 장 차이 –

#성경 #Bible #크리스천 #오해 #진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초심이라는 말의 함의는 무엇일까? 단순히 이제 시작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biginner(초심자)라는 말보다는 오히려 novice(아직은 미숙한 초보자)라는 말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필자가 처음 성경의 용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직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시기 즉 크리스천이 아니었던 시기였다. 스스로 성경적 의미를 탐색할 방법도 방향도 모르던 때라 주변의 크리스천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정경영 칼럼 52 참조) 즉 주기도문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100세의 나이에 얻은 귀한 아들 이삭을 번제 드리라고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장면은 크리스천이 아닌 학생의 처지에서는 당연히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었다. 주변의 어떤 크리스천 형제나 자매도 이에 대한 답을 주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00성경연구소라는 곳에서 받은 대답은 <형제님, 하나님 말씀은 따지지 말고 그냥 믿으세요!>였다. 크리스천이 아닌 일반인에게 맹목적 믿음의 강요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처방이었다.

세월이 흘러 교사가 되었고, 믿음 생활을 하는 크리스천이 되었다. 성경 통독을 하는 기회에 영어 성경을 읽게 되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한 시험은 test였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의 시험은 temptation 즉 유혹이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홍두께를 마주 보는 듯한 충격이었다. temptation과 test가 우연히 <시험>으로 번역됨으로 인한 혼란과 오해였다. temptation을 굳이 시험이라고 번역했어야 할 이유를 난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성경이든 학술서든 번역의 기준은 독자의 입장이 되어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가 없는 도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temptation(유혹)과 test(시험) 모두 <시험>으로 번역된 성경의 문제는 어쩌면 애교에 가깝다. 로마의 황제였던 Julius Caesar[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영어(성경)에서는 Caesar라고 쓰고 [씨저]라고 발음하는데, 왜 한국은 [가이사]라고 발음할까? 하는 의구심이 오랜 기간 나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혼란의 백미는 영어 스펠링 Caesar에 발음기호[ ]를 씌우면 [Caesar] 즉 [가이사]가 된다. 영어 성경을 한글로 번역했다면 참으로 어설픈 번역일 테지만, 한글 성경은 결코 영어 성경의 번역이 아니기에 영어 스펠링과 한글 표현의 같은 듯 다른 표현이 자못 궁금했다.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그리스어(헬라어)로 기록된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한국의 성경 번역은 먼저 번역된 중국의 성경 번역본을 참조하되 원문(구약은 히브리어, 신약은 그리스(헬라어))의 발음에 충실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의 절대 권력자인 Caesar는 개인 권력자를 넘어 황제를 뜻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라틴어였던 Caesar의 헬라어 발음이 [Kaisar(카이사르)]였다. 우리말 성경은 초기 번역 당시 중국어 성경(한문 성경)의 표기를 많이 참고했는데, 중국어 성경은 Caesar를 한자로 <개살(凱撒)>[Kǎisā])라고 음차하였고, 한국식 표현이 [가이사]가 된 것이다. 즉 한국에서의 가이사는 로마의 절대 권력자 Caesar[Kaisar(카이사르)]는 물론 세상의 황제를 의미하는 보통 명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영어로 동일한 단어 Caesar[Kaisar(카이사르)]를 [씨저]라고 바꾸어 발음하는 것은 영어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즉 영어는 외래어를 영어로 수용하는 단계에서 스펠링은 그대로 가져오되, 발음은 자신들의 편의대로 바꾸어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Paris[패리스]를 [파리]로, 에우스[예수]를 [지저스]로, 니케를 [나이키]로, 플라톤을 [플레이토]로 발음하는 것 등이 원어의 발음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들의 편의대로 발음을 바꾸어 영어식으로 발음한 예이다.

한글 성경의 외래어 표기를 참 서툴고 어색하게 느껴온 세월이 오히려 원전의 발음과 달라진 영어식 표현에 익숙한 그릇된 편견이었다. 오해와 진실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이번 칼럼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 널려있는 외래어의 표준이 영어라는 착각과 편견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주. 마태복음 22장 21절: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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