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내캉 꿀밤 따러 갈래?” 친구가 쉬고 있는 나를 꼬드긴다. 단짝이던 친구는 여학생이었지만, 누가 봐도 남자아이 같았다. 남자애들과 더 잘 어울렸고, 힘쓰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 애가 은근히 좋았다. 그 친구가 말을 걸면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고, 연필이나 지우개가 생기면 들키지 않게 그의 필통에 넣어주곤 했다. 그때의 나는 동네에서 소문난 말썽꾸러기였었다. 어른들이 고개를 가로 저을 만큼 사고를 몰고 다녔고, 동네의 골칫덩어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크고 작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 친구는 늘 내 곁에 있었다. 그는 내 그림자였고, 나 또한 그의 그림자였다. 그런 그가 꿀밤을 따러 가자고 한다. “그래, 가자! 어데로 가꼬?”. “앞산으로 가보재이. 거기 꿀밤 많다 카더라.”. “그라자!”. 나는 망태기를 메고, 친구는 막대기를 들었다. 앞산 중턱에 있는 아름드리 꿀밤나무를 골라 친구가 잽싸게 올라갔다. 나무 타는 건 언제나 그 친구의 몫이었고, 나는 아래에서 떨어지는 꿀밤을 줍는 역할이었다. “야! 이자부터 턴다. 잘 주워래이!”. “후두둑, 후두둑.”. 잘 익은 꿀밤이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그때였다. “아야!”. 짧은 비명과 함께, “툭!”하고 무언가 묵직한 것이 나뭇잎 위에 떨어졌다. 놀라서 살펴보니 친구였다. 꿀밤을 털다 말벌에 쏘인 것이다. 이마가 순식간에 부어올랐고, 떨어질 때의 충격과 통증으로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우짜노…! 우짜노…!’. 겁에 질려 손발이 떨렸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친구를 들처업고 무작정 마을로 달렸다. 가파른 언덕길을 어떻게 내려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얼굴과 팔이 긁히고 부딪히는 통증만 남아 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어무이요! 벌에 쏘였어요! 벌에 쏘였다카깨요!”. 홀치기를 하던 친구 어머니가 놀라서 마루로 뛰어나오셨다. 친구의 얼굴은 이미 많이 부어 있었고, 흙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엉망이었다. 당황한 어머니는 찬물을 친구의 얼굴에 끼얹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친구는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말벌 독이 퍼진 상태에서 찬물로 인한 쇼크로 심장이 멈춰버린 것이다.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은 불효자라 하여 관에도 넣지 않고 작은 단지(항아리)에 담에 산에 묻는다. 다음 날, 꿀밤나무 근처에는 작은 무덤 하나가 생겼다. ‘애물단지’라는 말이 있다. 말썽 많은 아이를 가리키는 말인 줄만 알았는데,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을 담아 묻던 단지를 뜻하는 말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가을이 깊어 가고, 꿀밤이 뒹구는 계절이 오면 지금도 그 친구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우 열 살이었는데….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가끔은 그 친구도 아직 나를 기억하는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꿀벌은 한 번 쏘면 죽지만, 말벌은 몇 번이고 공격할 수 있으며 독이 강해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2006년 여름, 나는 동경한국에서 영어 캠프를 진행하기 위해 학생들을 인솔하여 후쿠시마 쪽으로 갔다가 말벌에 쏘여 현지 병원에서 6일 동안이나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또 1990년 가을, 한국의 팔공산에서 스카우트 학생들을 인솔했다가 벌이 목구멍으로 들어가 목젖을 쏘는 바람에 죽을 고비를 넘긴 경험도 있다. 그때, 경험 많으신 교감 선생님이 지체 없이 나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기에 살았다. 당시 의사가, “조금만 늦었어도 기도가 막혀 큰일 날 뻔했습니다. 운이 좋으시네요.” 그 덕분인지, 그 이후로 나는 한 번도 목이 쉰 적이 없다. 목을 많이 사용하는 교사로서는 행운이었다. 이런저런 기억과 경험도 오랜 세월 속에 희미해져가지만 유난히 가을의 꿀밤 떨어지는 소리는 여전히 내 가슴 한 켠을 아프게 두드린다. 그날, 나무 위에서 떨어진 것은 꿀밤만이 아니었기 때문인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