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다. 지금은 이름도 바뀐 국민학교, 그때는 세상 모든 것이 크게 보이고 작은 일도 두려웠다. 5학년의 봄, 해마다 5월쯤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행사가 있다.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싫고 두려운 날, 바로 채변 검사였다.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채변 봉투를 나누어 주신다. ‘내일까지 꼭 가지고 오도록!’ 그 한마디에 아이들의 얼굴은 한꺼번에 찌푸려지고, 교실은 온통 시들어 버렸다. 그 시절 화장실은 모두 푸세식이었고, 채변을 하려면 ‘작전’이 필요했다. 밥보다는 나물과 풀떼기를 더 많이 먹던 시절이라, 결과물 속에서 밤알만 한 ‘목표물’을 골라낸다는 것은 거의 고고학 발굴에 가까운 어려운 작업이었다. 막대기로 조심조심 찍어 비닐봉지에 넣는 일, 냄새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돌돌 말아 묶는 일은 어린 우리에겐 거의 대공사(大工事) 수준의 난이도였다. 힘겹게 성공했다고 끝이 아니다. 그 봉투를 필통이나 책갈피에 넣어 가방 속에 갈무리하고, 도시락과 교과서와 함께 보자기에 싸 허리에 둘러메고 학교에 도착하면, 십중팔구는 내용물이 새어나와 연필과 공책을 처참하게 만들어 놓곤 했다. 그 시절엔 지우개도 귀해서 손가락에 침을 묻혀 글씨를 문지르던 때였으니 그 냄새와 사태 수습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채변 수집과 검사는 전교생이 제일 싫어하던 행사 중 하나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5학년 그 해, 나는 그만 채변봉투를 집에 두고 나오고 말았다. 문제는 담임선생님이 ‘호랑이’셨다는 사실이다. 회초리보다 무서운 건 그분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봉투를 내지 않은 아이는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씀이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집 앞 골목을 서성이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그 시절엔 개를 풀어 놓고 키우는 집이 많았고, 길바닥엔 개똥이 심심찮게 굴러다닌다. 개똥이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나 결국 개똥을 봉투에 집어넣었다. 어린 마음에도 잘못이라는 걸 몰랐던 건 아니다. 다만, 두려움이 양심보다 더 컸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교실 입구에 커다란 비닐봉지가 걸려 있다. ‘여기에 넣으시오!’ 아침부터 복도에는 냄새가 진동한다. 벌써 몇몇 아이들이 가져오지 못한 탓에 선생님으로부터 운동장으로 내몰렸다. ‘오전 중으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져와라!’ 그 한마디에 아이들은 학교 화장실과 뒷뜰, 실습장을 오가며 동분서주한다. 교실 유리창 너머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보일 때마다 우리는 배를 잡고 웃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인 채 풀숲을 뒤지고, 누군가는 심각한 얼굴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그 절박함이, 교실 안 우리에겐 그저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다.

지금 같았으면 인권이니 체벌이니 말이 많았겠지만, 그 시절 선생님은 하늘이었다. 우리는 웃었고, 그들은 진땀을 흘렸다. 나는 개똥 봉투를 이미 제출했기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나는 살았다.’ 하지만 안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뒤, 교무실에서 호출이 왔다. 하얀 가운을 입은 양호 선생님 옆에는 우리 담임선생님이 서 계셨다.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 한 장! 그리고 선생님의 낮고 굵은 목소리! ‘광견병이라니!’, ‘이거 니가 낸 거지?’, ‘넌 사람이 아니네! 니가 개냐?’ 순간 심장이 발뒤꿈치까지 떨어졌다. 교무실 공기가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내 귀에서는 심장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먼저 흘러내렸다. 무서워서라기보다, 들통났다는 두려움과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친구들을 웃으며 바라보던 내 모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 진 물이다.
그날 나는 회초리를 맞았다. 하지만 더 아팠던 건 매가 아니라, 선생님의 마지막 한마디이다. ‘아무리 겁이 나도,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지!’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지금도 가끔 5월 바람이 불어오면, 그 교실 입구의 커다란 비닐봉지와 채변을 위해 창밖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개똥 봉투를 꼭 쥔 채 안도하던 어린 내 얼굴도 함께 떠오른다. 어쩌면 그날의 채변 검사는 기생충을 잡기 위한 검사가 아니라, 내 마음속 작은 비겁함을 들춰내는 검사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두려움이 와도 한 번 더 생각하며 거짓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냄새는 사라졌지만, 그 교훈은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