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 파이팅이 쏘아 올린 일본어 남용 문제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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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는 월드컵 시리즈로 파이팅이 쏘아 올린 일본어 남용 문제에 대해 알아보았다. 오늘은 콩글리시인 줄 알았으나 재플리시(Japlish, Japanese English)인 경우, 축약형 재플리시, 일본어와 영어의 결합 축약형, 그리고 영어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재플리시인 경우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콩글리시인 줄 알았으나 재플리시인 대표적인 예로 노트북을 들 수 있다(노트북을 영어인 줄 아는 분들도 많다). 노트북은 일본인들이 <노토북쿠>라고 표현하는 것을 그대로 가져와 굳어진 경우다. 영어권에서 notebook은 종이 공책을 의미한다. 스펙(spec)은 기계의 사양을 뜻하는 specification을 줄여 부르는 것으로 사람의 학력이나 자격 조건에 빗대어 쓰는 재플리시다. 자동차의 핸들(steering wheel)과 크락숀(horn) 또한 콩글리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굳어진 재플리시다.
일본인들은 자전거나 마차의 손잡이를 잡고 방향을 튼다는 의미에서 <손으로 잡는 부분>을 뭉뚱그려 <핸들>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일본식 영어인 재플리시의 예로 사이드 브레이크, 오픈카, 빵꾸 등이 있다. 크락숀은 영어로 horn(경적, 뿔)이다. 왜 경적을 크락숀이라고 할까? 과거 자동차 경적을 독점하다시피 생산했던 미국의 자동차 부품 전문 회사 이름이 클락슨(Klaxon)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특정 브랜드 제품 또는 상표를 보통명사화 한 재플리시로는 호치키스, 바바리, 매직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단어의 형태나 기능을 임의로 잘라 만들거나 일본식 발음으로 만든 콘센트, 스탠드, 츄리닝 역시 우리 일상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재플리시다. 참고로 포크레인, 스카치테이프, 크리넥스, 락스, 봉고차, 지프차 등은 재플리시가 아닌 콩글리시다.
긴 단어를 앞부분만 싹둑 잘라 쓰는 일본어 특유의 축약형 재플리시는 일본 문화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고인이 된 이어령 교수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일본 문화의 본질을 줄이기(shrinking)로 보았다. 거대한 자연을 작은 화분 안에 축소한 분재(Bonsai), 거대한 전자기기를 손 안에 들어오게 만든 트랜지스터라디오, 그리고 워크맨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축소지향의 문화적 DNA는 언어 습관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에어 컨디셔너(air conditioner)는 에어컨이 되었고, 리모트 컨트롤(remote control)은 리모컨이 되었다. 축약형 재플리시의 또 다른 예로는 아파트(apartment), 슈퍼(supermarket), 테레비(television), 데모(demonstration), 프로(professional), 아마(amateur), 콤비(combination), 미싱(sewing machine) 등이 있다.
일본어와 영어의 결합형을 혼종어(hybrid word) 또는 혼성어(blend)라고 한다. 일본어와 영어의 결합형을 축약한 예로 지난 호에서 언급한 가라오케는 가라(空, 빈)와 오케스트라의 결합어 즉 <가수의 목소리가 비어 있고 반주만 나오는 오케스트라>라는 의미다. 이처럼 서로 다른 언어의 핏줄이 섞여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한 흥미로운 혼합축약형 사례로 만땅<(한자 만(滿, 가득 찰 만) + 영어 탱크(tank)>, 돈까스<(한자 돈(豚, 돼지 돈) + 서양 요리 커틀릿(cutlet)>, 식빵<(한자 식(食, 먹을 식) + 포르투갈어로 빵을 뜻하는 팡(pão)>, 생맥주<한자 생(生) + 영어 비어(beer, 비루)>, 고무다라이< 네덜란드어 고무(gom) + 큰 대야를 뜻하는 일본어 다라이(盥)>가 있다. 전자레인지는 아예 microwave를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경우다.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던 일본인들이 microwave를 도입할 때 <전자기파를 사용하는 레인지>라는 의미로 <전자레인지>라고 한 것이다. 안전벨트(seat belt), 비닐봉지(plastic bag), 골인(goal), 샤프펜슬(mechanical pencil) 또한 혼종어의 예다.

마지막으로 영어인 줄 알았지만 전혀 다른 어원의 뿌리를 가진 재플리시도 있다. 컨닝(cunning)은 영어로 cheating이며, 싸인(sign)은 autograph 또는 signature의 일본식 조어다. 오토바이(autobike)는 auto와 bicycle을 일본식으로 결합한 말이며, 영어로 motorcycle 또는 motorbike라고 한다. 스킨십(skinship)은 피부(skin)와 관계를 뜻하는 접미사(-ship)를 합친 대표적인 재플리시로 영어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백미러(back mirror)는 뒤를 보는 거울이라는 직관적인 조합이지만 실제 영어 명칭은 rearview mirror다.
일본어의 영향 또는 일본어의 남용 문제는 파헤칠수록 심각하다. 우리가 영어를 글로벌 언어로 수용하듯이 구두처럼 이미 귀화어가 된 일본어까지 배척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말로 가능한 표현까지 일본어를 남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