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영 칼럼 88] jky의 영어이야기

– 월드컵(4) :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던 말_무분별한 일본어의 남용1 –

#월드컵 #축구 #결승전(決勝戰) #한일전(韓日戰) #싸움 #전쟁 #전투 #일본어 #콩글리시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월드컵 결승전을 보면서 참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서구인들에게 월드컵이 게임(game)을 즐기는 축제의 장이라면, 우리에게 게임은 민족의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다. 영어권에서는 이번 월드컵의 결승전을 최종 승자를 가리는 마지막 경기라는 의미로 <2026 FIFA World Cup Final>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를 <2026 FIFA World Cup 결승전(決勝戰)>이라고 한다. 이 두 표현의 차이는 무엇일까?

영어에서 게임(game)의 어원은 <유희, 즐겁게 놀다>에서 온 말로 신체 운동부터 디지털 게임 등 <규칙(Rule) 안에서 겨루는 모든 유희적 행위>를 말한다. 여기에서 겨루는 대상은 타인이든 시스템이든 상관이 없으며, 정해진 규칙과 불필요한 장애물을 자발적으로 극복해 내며 기쁨(gamen)을 얻는 모든 유희적 행위를 일컬어 게임이라고 한다. 그래서 <2026 FIFA World Cup Final>은 즐기는 게임의 마지막 단계일 뿐이다.

반면, 한국의 <결승전(決勝戰)>은 싸움(戰) 즉 대결의 치열함에 초점을 맞춘 단어다. 결승전뿐만 아니라 3·4위전, 한일전, 예선전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르는 거의 모든 경기에 <싸움(戰)>이라는 글자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왜 한국은 운동 경기에 싸움(戰)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일본 강점기로 올라가야 한다.

메이지 시대부터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본 사회는 국가주의와 군국주의가 극에 달했던 시기다. 이 시기의 일본은 학교 체육과 스포츠를 단순한 <유희로써의 게임(game)>이 아닌, <국력 신장과 신체 단련을 위한 가상 전쟁(War/Battle)>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일본은 스포츠를 <신체 단련 및 전사(戰士) 양성의 수단>으로 여겨 스포츠 경기마다 <전(戰), 투(鬪), 격(擊)>과 같은 호전적인 한자를 결합해 사용했다.

그래서 <운동 경기>를 <싸움(戰)>으로 표현하는 일본인들은 운동 경기를 보다 투쟁적이고 공격적인 의미인 <싸워라!>의 의미로 영어의 <fight!>를 일본식 발음으로 <파이토(ファイト)>라고 외쳤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본떠서 <파이팅(fighting)>을 차용하게 된 것이다.

언젠가 내가 칼럼에서 사용한 <파이팅>이라는 용어에 신랄한 비판을 한 친구가 있었다. <파이팅>의 유래를 아는 친구가 볼 때 개념이 있다고 생각한 내가 일본어의 잔재인 <파이팅!>을 외치니 아마도 실망이 컸으리라. 친구의 지적은 사실 나에게는 응원의 메시지였다. 이렇게 개념 있는 친구가 있고, 그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언어의 사대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영어권 문화에서는 <파이팅>이 아닌 <Go, go, go!>라고 외친다. <승리를 향해 전진하라, 전진하라, 전진하라!>는 의미다. 영어권에서는 고대 수사학부터 이어져 온 <3의 법칙(Rule of Three)>이라는 전통이 있다. 이들은 인간의 뇌는 정보를 3개로 묶어서 받아들일 때 가장 완벽하고, 안정적이며, 기억하기 쉽고 리듬감이 넘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Ready, Set, Go!(제자리, 준비, 출발!)>와 <Blood, sweat, and tears(피, 땀, 눈물)>가 좋은 예다. 실제로 외국의 축구 경기 응원 장면을 보면 <Go, go, go>라고 외칠 때 역동감과 리듬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난 언어적 반전이 있다. 비록 파이팅(fighting)의 태생은 군국주의 시대의 잔재인 일본식 영어를 모방한 것이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들 특유의 열정과 역동적인 응원 문화가 덧입혀지면서, 파이팅(fighting)은 이제 영어의 본고장에서도 인정받는 우리만의 독자적인 단어로 재탄생하였다. 스킨십(skinship), 대박(daebak), 먹방(mukbang), 오빠(oppa), 치맥(chimaek), 콩글리시(Konglish) 등과 함께 콩글리시인 <fighting>이 2021년도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것이다.

일본식 영어인 재플리시 <파이토>는 없어도 콩글리시인 <파이팅(fighting)>은 영어 사전에 등재됨으로 인해 K-English가 영어의 본고장으로 역수출된 좋은 사례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K-pop, K-drama, K-food 등 K-power 만만세 시대에 살고 있다! 다음 호에서는 일본어 남용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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