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5) : 파이팅이 쏘아 올린 일본어 남용 문제 2 –
#월드컵 #결승전(決勝戰) #한일전(韓日戰) #파이팅 #콩글리시#재플리시 #일본어남용
지난 호에서는 놀이와 축제라는 게임(game)의 본래적 의미가 전투력 향상을 위한 싸움(戰)으로 변질된 결승전(決勝戰) 또는 한일전(韓日戰)과 같은 일본식 경기 용어의 문제점, 그리고 이러한 전투 용어로 사용한 일본식 영어(재플리시)인 파이토(fight)를 한국식 영어(콩글리시)로 사용하는 파이팅(fighting)에 대해 알아보았다.
필자가 공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에 투입되었을 때 공사 현장의 용어는 일본어 잔치였다. 학교 수업을 통해서도 배웠고, 한전 초보 시절 공문을 통해서도 일본식 현장 용어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 막상 현장 감독으로 투입되었을 때 실제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사용하는 일본식 공사 자재 명은 귀에 거슬리기만 했다. 그 당시 공사 현장 총책임자는 일본식 표현으로 십장이라고 불리었다. 아무튼 그 초보 감독 시절 십장으로 불리던 작업반장께서 나에게 일본식 자재 보충을 요청하면 나는 요청 내용을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반장님, 죄송하지만 저는 일본말 몰라요. 우리말로 말씀해 주세요.”하고 정중하게 답변하곤 했다. 그러면, 작업반장께서는 “우리 감독님은 아직 어려서 일본말 모르시는구나!” 하면서 우리말로 용어를 바꾸어 부족한 자재를 요청하시곤 했다. 전혀 갈등 없이 자연스럽게 현장의 일본식 공사 용어를 해결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렇다면 영어를 포함한 무분별한 외래어가 난무하는 이 시기에 일본식 외래어만 무조건 피해야 할 비난의 대상일까? 언어는 시대의 거울이자 살아 숨 쉬는 유기체다. 다른 언어의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수용의 양상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반드시 걸러내야 할 불순물들이 존재한다. 우리말에 스며든 일본어의 흔적은 크게 네 가지 층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미 뿌리내린 <귀화어>의 영역, 글로벌 시대의 <외래어로서의 일본어>, <무분별한 일본어 남용>, 그리고 <일본식 영어(Japlish)>가 그것이다.
구두, 냄비, 가방, 고구마 등은 이미 우리말로 뿌리내린 <귀화어>다. 일본의 라멘에서 유래한 라면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어찌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을까? 오히려 외국에서는 이미 우리의 라면(Ramyeon)을 일본의 라멘(Ramen)과 엄격히 구별하여 K-food를 대표하는 독립적인 고유 명사로 인정하는 추세다. 한편, 컴퓨터나 인터넷을 그대로 쓰듯 <외래어로서의 일본어>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영역이다. 예를 들어, 가라오케(Karaoke), 쓰나미(Tsunami), 코스프레, 스도쿠 등은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된 글로벌 명사다. 글로벌 시대에 살면서 외래어로서 영어는 되고, 일본어는 안된다는 생각은 편협한 억지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말로 충분히 아름답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음에도 알량한 허세나 습관이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일본어 남용은 문제다. 가오잡다, 나와바리, 기스, 만땅, 간지나다, 뽀대, 찌라시, 무대뽀, 땡깡, 유도리, 쿠사리, 단도리, 뽀록나다 등이 그 예다. 한국인이 일본인들 앞에 이런 말들을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괜히 나의 얼굴이 부끄러워진다.

영어를 전공한 필자의 입장에서 가장 개탄스럽게 생각하는 문제는 <일본식 영어(Japlish)>의 남용이다. 종성 발음이 안 되는 일본어의 특징상 영어 발음을 일본식으로 바꾸어 국적 불명의 언어가 된 재플리시를 문제의식 없이 답습하기 때문이다. 재플리시는 대부분 영어의 끝 자음 뒤에 억지로 모음을 붙여 발음하거나, 종성 발음을 없애고 줄이는 경우라고 보면 된다. 빠꾸(back), 오라이(all right), 바케쓰(bucket), 쓰레빠(slipper), 사라다(salad), 테레비(television)가 좋은 예다.
한국어는 세계 어느 언어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풍부하고 정교한 종성(받침) 발음 체계를 갖추고 있다. 영어를 영어의 원음에 가깝게 발음할 수 있는 훌륭한 발음체계와 문자를 가졌음에도, 종성을 발음하지 못하는 일본식 영어의 발음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은 언어학적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부끄러운 사례다.
<2026 FIFA World Cup Final>이 남긴 단상이 길어졌다. 다가오는 2030 월드컵에서는 전투적 <전쟁(戰)> 용어인 <2030 FIFA World Cup 결승전(決勝戰)>이 아닌 <2030 FIFA World Cup 결승 경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플라시보 효과처럼 언어가 바뀜으로 인해 경기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은 물론 선수들 또한 짊어진 중압감 대신 진정한 축제의 장을 즐기는 형태로 바뀔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