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도 서양식 스테이크 문화가 널리 자리 잡으면서 레어(レア), 미디엄 레어(ミディアムレア), 미디엄(ミディアム), 웰던(ウェルダン)이라는 표현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일본 음식문화에서 고기의 익힘 정도는 고기 종류와 조리법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
특히 안전 측면에서는 소고기 덩어리육과 다진 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같은 기준으로 볼 수 없다.
소고기 스테이크는 ‘레어’ 문화 정착
일본의 스테이크 전문점과 철판구이점에서는 소고기를 레어부터 웰던까지 손님의 취향에 맞춰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레어는 겉면을 강하게 익히고 내부는 붉은색을 많이 남긴 상태다. 미디엄 레어는 중심부가 붉거나 선홍색을 띠면서 레어보다 내부 온도가 높다. 미디엄은 중심부에 분홍색이 남아 있는 정도이며 웰던은 내부까지 충분히 익힌 상태를 의미한다.
일본의 고급 와규 전문점에서는 지방이 많은 와규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레어나 미디엄 레어를 권하는 경우도 있다. 지나치게 오래 가열하면 지방이 많이 빠지고 육질과 풍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식 철판구이에서는 셰프가 고기의 두께와 지방 분포를 확인하면서 표면을 고온으로 굽고 내부 익힘을 조절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소고기니까 모두 레어가 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덩어리 고기와 햄버그는 완전히 다른 문제
일본 후생노동성은 식중독 예방을 위해 육류를 충분히 가열해 먹도록 안내하고 있다. 일반적인 안전 기준으로는 육류 중심부를 75도에서 1분 이상 가열하거나 이와 동등한 수준으로 가열하는 방식이 제시된다.
특히 햄버그나 햄버거 패티처럼 다진 고기는 스테이크와 다르다.
소고기 덩어리는 병원성 미생물이 주로 표면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 표면을 충분히 가열하는 방식이 사용될 수 있다. 반면 고기를 다지는 과정에서는 표면에 있던 세균이 고기 내부까지 섞여 들어갈 가능성이 생긴다.
이 때문에 일본 후생노동성도 생고기를 사용한 햄버그 등은 중심부까지 충분히 가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겉은 갈색으로 익었지만 가운데가 붉은 햄버그를 스테이크의 ‘미디엄 레어’와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돼지고기 ‘레어’는 원칙적으로 피해야
돼지고기는 기준이 더욱 엄격하다.
일본에서는 2015년 6월부터 돼지고기와 돼지 내장을 생식용으로 판매하거나 제공하는 것이 금지됐다.
돼지고기를 날것이나 불충분하게 익힌 상태로 먹으면 E형 간염 바이러스와 식중독균 등에 노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돼지고기의 신선도와 관계없이 중심부까지 충분히 가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일본 음식점에서 ‘돼지고기 레어’라는 표현이 사용되더라도 일반적인 소고기 스테이크의 레어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최근 저온조리 방식으로 돼지고기를 연한 분홍색으로 제공하는 음식점도 있지만 색깔만으로 안전성을 판단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중심부가 안전에 필요한 온도와 시간 조건을 충족했는지 여부다.
닭고기는 더욱 철저한 가열 필요
닭고기는 일본에서도 식중독 위험이 높은 육류 가운데 하나로 관리된다.
특히 캄필로박터 식중독과 관련해 일본 농림수산성은 닭고기를 중심부까지 충분히 가열하고 중심 온도 75도 이상에서 1분 이상 가열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닭고기를 씻는 행동도 권장되지 않는다. 생닭을 물로 씻는 과정에서 튄 물방울을 통해 주변 조리기구나 식재료로 세균이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일부 지역에는 닭고기를 생식 또는 반생 상태로 먹는 향토 식문화가 존재하지만 식품안전 측면에서 일반적인 가정 조리 방식으로 권장되는 것은 아니다.
유케 사건 이후 달라진 일본의 생고기 관리
일본의 생고기 관리가 크게 강화된 계기 가운데 하나는 2011년 발생한 소고기 유케 관련 집단 식중독 사건이다.
이후 일본 정부는 생식용 소고기에 별도의 규격기준을 마련했다.
생식용으로 제공되는 소고기는 일반 스테이크용 소고기를 단순히 날것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가공·위생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마련한 기준에는 고기 표면에서 깊이 1㎝ 이상까지 일정 조건으로 가열살균하는 방식 등이 포함돼 있다.
소고기라고 해도 ‘신선하면 생으로 먹어도 된다’는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 요리에서 중요한 것은 ‘색’보다 온도
고기의 익힘 정도를 판단할 때 많은 사람이 단면 색깔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고기가 붉다고 반드시 덜 익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갈색으로 변했다고 반드시 안전한 것도 아니다.
일본 농림수산성 역시 햄버그처럼 외관이나 단면만으로 충분한 가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음식에서는 중심 온도를 확인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결국 일본 요리에서 고기의 익힘 정도는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눠볼 필요가 있다.
소고기 스테이크와 철판구이에서는 레어·미디엄 레어·미디엄·웰던이라는 ‘맛과 식감의 선택’이 존재한다. 반면 돼지고기·닭고기·다진 고기는 익힘 정도를 취향의 문제로만 접근하기 어렵다.
특히 햄버그나 닭고기를 소고기 스테이크처럼 ‘레어가 맛있다’는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식품안전 측면에서 위험할 수 있다.
일본에서 고기 요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얼마나 붉은가’보다는 어떤 종류의 고기인지, 덩어리육인지 다진 고기인지, 그리고 중심부가 어느 정도 가열됐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