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름을 물들이는 ‘봉오도리’

  • 조상을 기리는 춤에서 세계인의 축제로

무더운 여름밤 은은한 등불 아래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천천히 춤을 춘다. 북소리와 민요가 울려 퍼지고 남녀노소는 손동작 하나하나를 맞추며 하나의 원을 완성한다. 일본 여름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인 ‘봉오도리(盆踊り)’의 풍경이다.

봉오도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명절인 ‘오봉(お盆)’ 기간에 조상의 영혼을 맞이하고 다시 보내드리는 의식에서 비롯된 전통 춤이다. ‘봉(盆)’은 오봉을, ‘오도리(踊り)’는 춤을 뜻한다. 오늘날에는 여름 축제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본래는 조상을 추모하고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종교적·민속적 의미를 담고 있다.

봉오도리의 기원은 불교 경전인 ‘우란분경(盂蘭盆經)’에 등장하는 목련존자의 설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어머니를 구한 목련이 기쁨에 겨워 춤을 춘 것이 봉오도리의 시작이라는 전설이다. 역사적으로는 가마쿠라 시대 승려 잇펜(一遍)이 전국을 돌며 염불과 함께 추던 ‘염불춤(念仏踊り)’이 민간에 퍼지면서 오늘날의 봉오도리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봉오도리는 단순한 춤이 아니라 조상의 영혼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의례이자 풍년과 풍어,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공동체 행사로 이어져 왔다. 에도 시대에는 마을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는 사교의 장으로도 기능했으며 지역 주민들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문화행사였다.

축제는 대개 중앙에 ‘야구라(櫓)’라 불리는 높은 무대를 세우고 그 위에서 북과 피리, 민요를 연주하면 참가자들이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춤 동작이 비교적 단순해 처음 참가하는 사람도 쉽게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 봉오도리의 큰 특징이다. 일본에는 지역마다 서로 다른 봉오도리가 전승되고 있으며 그중 ‘일본 3대 봉오도리’가 특히 유명하다.

기후현의 ‘구조 오도리(郡上おどり)’는 4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며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축제로 유명하다. 특히 마지막 나흘간은 밤을 새워 춤을 추는 ‘철야 오도리’가 열려 전국의 관광객과 춤꾼들이 몰려든다.

아키타현 우고마치의 ‘니시모나이 봉오도리(西馬音内盆踊り)’는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무용수들이 느리고 우아한 춤을 선보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약 7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춤은 예술성과 전통성을 인정받아 국가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됐으며 2022년에는 일본의 ‘후류(風流) 춤’의 일부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이름을 올렸다.

도쿠시마현의 ‘아와 오도리(阿波おどり)’는 일본 최대 규모의 봉오도리 축제로 꼽힌다. 매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으며 빠른 장단과 역동적인 춤이 특징이다. '춤추는 바보나 보는 바보나 모두 같은 바보라면 춤추는 편이 낫다'는 구호는 아와 오도리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봉오도리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도쿄 나카노 봉오도리 축제처럼 전통 민요뿐 아니라 J-POP과 대중음악을 접목해 젊은 세대와 외국인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봉오도리를 종교 의식을 넘어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문화 콘텐츠로 확장시키고 있다.

수백 년의 세월을 이어온 봉오도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과 공동체 정신 그리고 지역 고유의 문화를 담아낸 일본의 대표적인 여름 문화유산이다. 시대에 따라 형식은 달라지고 있지만 사람과 사람을 하나의 원으로 이어주는 봉오도리의 본질은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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