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에 사죄한 일본 석학 무라오카 다카미쓰 별세

일본 과거사 반성에 앞장서 온 성서학자 무라오카 다카미쓰 네덜란드 레이던대 명예교수가 지난 10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일본 그리스도신문은 13일 그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1938년 히로시마현에서 태어난 무라오카 교수는 이스라엘 히브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경 히브리어의 강조 표현 연구로 국제 학계에 이름을 알렸으며, 영국 맨체스터대와 호주 멜버른대, 네덜란드 레이던대 등에서 히브리어와 이스라엘 고대사를 가르쳤다. 2017년에는 영국 국가 학술원인 브리티시 아카데미가 수여하는 버킷 메달을 받았다. 성서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학자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그는 학문적 성취와 함께 일본의 전쟁 책임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200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포로가 됐던 네덜란드인 교사의 일기를 번역·편집한 ‘넬과 아이들의 키스를’ 출간을 계기로 전쟁 피해자들의 기록에 깊이 천착했다. 2008년에는 인도네시아 여성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다룬 ‘위안부 강제연행’을 펴냈고, 2013년에는 네덜란드계 호주인 잔 러프 오헤른의 전쟁 범죄 고발 저서 ‘꺾여버린 꽃’을 일본어로 번역·출간했다.

2003년 퇴직 이후에는 일본 침략으로 상처를 입은 아시아 각국을 찾아 무료 강의를 이어갔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홍콩, 필리핀 등지에서 성서학을 가르쳤으며, 2014년에는 서울 횃불 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와 포항 한동대에서 강단에 섰다.

2015년 5월 27일에는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 참석해 사죄문을 낭독했다. 그는 “일본군이 상처를 입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짓밟은 역사는 조국의 역사라는 점에서 일본 국민으로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희생자의 상처를 악화시키는 현 정부 모습에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낀다”고 말하며 길원옥 할머니 등 피해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2023년 7월 14일에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이준 열사 순국 116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특별 연설을 했다. 그는 “어두웠던 과거사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을지 모르지만,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미래도 없다”고 강조했다.

평생 성서학 연구에 헌신한 학자이자, 전쟁 책임에 대한 성찰을 행동으로 옮긴 지식인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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