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수많은 추억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추억은 과거를 살아낸 시간의 흔적이자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중요한 조각들입니다. 어린 시절의 소소한 놀이부터 가족들과 함께했던 순간 그리고 때로는 아픈 기억까지도 모두 우리의 추억이 됩니다. 하지만 추억은 단순히 지나간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자,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는 이정표입니다. 시골 아이들이 돼지 오줌보로 만든 축구공을 들고 뒷산 잔디밭에서 축구를 즐기던 모습은 오늘날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정겹고 따뜻한 풍경입니다. 소박한 놀이에서 느꼈던 기쁨과 어른들이 품앗이로 서로를 돕던 공동체적 삶은 지금의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이웃과의 교류와 공동체의 가치는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추억은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다운 삶, 즉 서로 돕고 기쁨을 나누는 삶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추억은 우리에게 오늘의 소중함을 알려줍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내일의 추억이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추억을 단순히 그리워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뿐 아니라 잘못했던 일이나 후회했던 일들까지 돌아보며,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그 시절의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추억은 우리를 반성하고 성찰하게 하며, 내일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됩니다. 추억은 시간의 잔재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추억 속에서 배우고 그것을 오늘의 삶에 녹여내야 합니다. 삶의 모든 순간은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추억을 만들고 있을까요? 오늘이 내일의 추억이 될 때, 그 추억이 우리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을 정성껏 살아가야 합니다. 추억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주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가장 소중한 시간의 선물입니다.

‘쓱싹, 쓱싹!’
아랫집 아저씨가 우리 집 뒷마당에서 칼을 갈고 있습니다. 아이들 예닐곱 명이 아저씨를 둘러싸고 눈을 떼지 못하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조금 뒤에 벌어질 일을 이미 알고 있기에 아이들은 속으로 간절히 무언가를 부탁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일은 우리 아버지 회갑 잔치입니다. 어머니가 몇 년 동안 부지런히 품앗이를 해 두신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밀주는 순이네 집에서, 감주는 철교네 집에서 맡아 주었습니다. 오늘은 작년에 영철이네 누나 결혼식 때 우리 집에서 보냈던 돼지를 되돌려 받는 날입니다. 그래서 아랫집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와서 돼지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집에서 직접 키운 돼지를 잡아먹는 일이 마음에 걸려서인지 우리 마을에서는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 돼지를 서로 바꿔 사용하는 품앗이가 있습니다. 돼지를 잡는 일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힘든 일을 서로 도우며 품을 갚는 품앗이를 하고 있습니다. 한 가족의 부족한 노동력을 다른 가족들이 빌려주고 나중에 갚는 방식입니다. 주로 논 갈기, 모내기, 물 대기, 김매기, 추수, 풀베기, 지붕의 이엉 엮기, 퇴비 만들기, 길쌈하기 등의 힘을 합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특히 관혼상제 등 집안의 큰 행사에서는 품앗이가 필수입니다. 평소 동네에서 나쁜 언행을 하는 경우는 품앗이를 할 수 없기에 동네에서 살아가기가 힘들어집니다. 어머니도 회갑을 준비하며 여러 이웃집에 품앗이를 해 두어 아버지 회갑을 맞아 기쁘게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쾌애애액…!’ 아저씨가 술을 드셨을까요? 평소에는 단번에 돼지의 숨통을 끊으시는데 오늘은 애를 먹고 있습니다. 네 다리를 꽁꽁 묶어 서너 명의 동네 아저씨들이 눌러 잡고 있는데도 돼지는 발버둥을 치며 사방으로 피를 튀깁니다. 그 모습을 보니 돼지가 안쓰럽고 불쌍해집니다. 아저씨도 잠시 고개를 돌립니다. 그렇게 20분 이상 싸움 끝에 돼지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저씨는 미리 준비한 끓는 물을 부어가며 돼지털을 능숙하게 밀어냅니다. 금새 벌거숭이가 되어 뽀얀 속살을 드러내며 도마 위에 돼지는 덩그러니 놓입니다. 아저씨는 돼지 배를 가르고 계속 작업을 이어갑니다. 처음 받아두었던 피는 창자 속에 부어 넣습니다. 창자 정리가 오래 걸리면 피에 소주를 부어 엉키지 않게 합니다. 이렇게 창자 속에 피를 넣어 삶아내면 순대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순대는 돼지 창자에 피만 넣어서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순대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재료도 대체물을 사용하고 속에 넣는 것도 다양해져 맛도 많이 변했습니다. 모든 작업이 완료되면 아저씨는 앞다리 하나를 챙깁니다. 등골도 아저씨 차지입니다. 소주 한 잔에 곁들여 날것으로 먹곤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저씨는 맨정신으로는 돼지를 잡지 못하고 늘 술에 취해서 작업을 합니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이제 이 일을 그만둬야지, 정말 그만둬야지…’ 라고 중얼거립니다.
우리 아이들의 관심은 돼기 고기도 아니고 순대도 아닙니다. 우리는 배를 갈라 내장을 정리하실 때 나오는 오줌보를 원하는 것입니다. 흠집 내지 않고 잘 떼어달라고 간절한 눈빛을 아저씨에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오늘도 아저씨는 우리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흠집나지 않은 완벽한 돼지 오줌보를 우리에게 건네줬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끗이 씻고 적당히 바람을 불어넣어 실로 묶은 뒤 입구 부분을 정리하여 천연가죽 축구공을 만듭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 동네 뒷산 잔디밭으로 달려갑니다. 오래된 묘지가 여러 개 있는 잔디밭은 언제부턴가 우리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돼지 오줌보를 학교 운동장에서 차면 금방 터지기 때문에 천연 잔디 위에서 차는 것입니다. 힘 조절을 잘하며 공을 차야 합니다. 너무 세게 차다가는 터지게 되어 낭패를 봅니다. 도중에 오줌보가 터지면 다음번 돼지 잡는 날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모두가 조심합니다. 돼지 오줌보로 축구를 즐기던 우리는 어느새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됩니다. 차범근!, 이회택!을 외쳐댑니다. 기분이 째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히 차도 돼지 오줌보는 하루를 버티기 어렵습니다. 서산에 해가 떨어지고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면 우리는 점점 초조해집니다. 돼지 오줌보가 누군가의 발길에 터질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때쯤이면 모두 같은 생각을 합니다. ‘제발, 내가 찰 때 터지지 말아 줬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