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밤, 가슴속 비밀의 문을 열고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속 깊이 비밀의 방 하나쯤은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첫사랑의 설렘을 누군가는 이루지 못한 꿈의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고독과 상처를 넣어두고 말입니다. 비밀은 때로는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무게가 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날에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나의 비밀의 방 속에는 오래전 내 가슴을 채웠던 그리고 지금도 지독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이 들어있습니다. 나를 울게도 만들고 때로는 살아온 길을 돌아보게 하며 또 때로는 앞으로의 길에 힘을 보태어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각자의 비밀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기도 하고 타인을 알아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음을 찾아가는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우리의 삶은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밤도 비가 내립니다. 반에 내리는 비는 나를 오래전으로 데리고 가서 늘 내 가슴속 깊은 곳까지 스며듭니다. 나를 웃게 하고 울게 했던 그 아이와의 시간들이 빗방울에 실려 다가옵니다. 기억 속 그 시절은 여전히 따뜻하고 그 아이와 함께였던 날들은 비밀의 방에서 변함없이 숨 쉬고 있습니다. 나는 깨닫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크기와 상관없이 각자의 비밀의 방이 존재하며 비밀이야말로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요. 비밀은 단지 숨겨야 할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아픔을 통해 삶을 배우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더 나은 자신으로 변화할 수 있는 출발점이기도 하니까요. 비밀 속에 담긴 우리의 진심은 누군가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힘이 되어줍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밤이면 나는 누군가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집니다. 그 편지는 전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 마음속 비밀의 문을 열어 글로 적는 순간 그리움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소중한 추억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나는 비밀을 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 더 깊이 연결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비는 멈추고 햇살이 다시 세상을 비출 것입니다. 그러나 비가 그친 뒤에도 우리의 가슴속 비밀은 여전히 비밀의 방에 남아 우리를 감싸줍니다. 비밀은 우리를 아프게도 하지만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그리움이 추억으로 아픔이 따뜻함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침부터 찌푸리던 하늘이 밤이 되어 기어이 비를 뿌립니다. 이런 날이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나는 중학교 시절 20리나 되는 길을 걸어서 읍내 중학교에 다니던 시골 소년이었습니다. 나의 첫사랑은 그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아이와 나는 동급생으로 방과 후 활동으로 미술부를 같이 했습니다. 취미가 같아서가 아니라 그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이 좋아서 그리기부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교정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함께 그림을 그리던 시간은 나에게 있어 학교를 다니는 의미였습니다. 나는 글도 잘 쓰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으로 싸움 실력도 제법 있었으며 운동도 제법 잘했던 짱이었습니다. 주변의 많은 여학생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모든 시선은 오로지 그 아이에로만 향해 있었습니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그림을 열심히 그리는 것도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는 것도 그 아이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그 아이는 나에게서 떠나버렸습니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자는 쪽지 한 장을 남기고 말입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느낌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눈앞이 깜깜해진다는 느낌도 그때 처음 느꼈고 입안으로 떠 넣는 밥알이 모래알 같다는 말도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그 아이만 보였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인지 모를 열병을 앓고 나서야 읍내 병원에서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한 학기를 남겨 놓은 나의 중학교 시절은 지옥이 되었습니다. 학교에 갈 수도 없었고 공부도 운동도 그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민학교 때부터 언제나 학교생활을 같이 하며 나만 바라보던 나의 해바라기 단짝 친구의 조언과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학교를 다시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그 아이의 흔적을 많이도 찾았지만 만날 수가 없었고 일본으로 갔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나는 어떻게든 일본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우연이라고 혹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일본의 오키나와부터 홋카이도까지 기회만 있으면 일본을 찾았습니다.

세월은 흘러 이번 생에서는 인연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무렵 나는 다니던 학교에 휴직을 내고 일본으로 가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토요일에는 한글학교에서 재일동포 아이들에게 한글과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밤에는 민단에서 운영하는 민족대학인 코리안 아카데미에서 재일동포 성인들에게 한글과 우리 역사 그리고 문화를 가르쳤습니다. 사실 일본으로 간다고 했을 때 주변 모두가 말렸습니다. 좋은 직장 버려두고 친척도 친구도 없는 외국에 가서 무슨 고생을 사서 하느냐며 말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살다 보면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굳은 믿음으로 1999년 4월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일본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한 달 내내 열심히 모아도 17만 엔 정도의 수입을 얻을 수 있었는데 집값이 한 달에 13만 엔이었습니다. 그 외 각종 세금 및 공과금으로 3만 엔 정도가 지출되면 달랑 1만 엔이 남을 뿐입니다. 교통비와 생활비로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내가 벌인 일이었기에 묵묵히 참고 열심히 견뎠습니다. 나의 정성이 그 아이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투쟁 같은 삶 속에서 1년이라는 세월이 후딱 지나갔습니다. 새천년을 맞이하는 2000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로 떠들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의 국력이 올라가고 해외여행 자율화 바람으로 일본으로도 많은 한국인들이 몰려들어 도쿄 신주쿠 쇼쿠안 도리에는 한국인 거리가 형성될 정도였습니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고 내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어느 날 나는 꿈에도 그리던 그 아이와 우연히도 소식이 닿았습니다. 기적 같은 만남을 이루었지만 20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은 너무 컸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다 털어놓기도 전에 다시 소식이 끊겼습니다. 가슴 아픈 그리움만 키우고 말입니다. 지금도 한 번씩 가슴 한쪽이 텅 빈 듯한 느낌은 그 아이 때문일까요? 이제는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겠지만 우연이라도 한 번 더 마주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오늘 밤도 비가 내립니다. 이런 날은 잊고 있던 그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그리운 마음을 담아서. 지금은 지나간 시간 속으로 젖어 드는 비 오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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