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수학여행, 누구의 탓인가

나는 5학년 때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온 시골에서 자란 촌놈이다. 6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처음 경주를 갔다. 기차도 처음이었고 3층 집도 처음이었다. 불국사와 첨성대를 바라보던 그날의 감동은 아직도 또렷하다. 고등학교 때는 비 오는 설악산을 오르며 친구들과 우정을 쌓았고, 선생님 몰래 불 꺼진 방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속에 청춘의 열기를 식히던 숙소의 밤, 불국사 앞에서 나무판에 그림을 그려주던 가게 주인의 솜씨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 수학여행은 그렇게 한 사람의 기억과 취향, 때로는 삶의 방향까지 바꾸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요즘, 이런 추억인 수학여행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교사의 과도한 안전 책임, 일부 학부모의 극성 민원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대통령이 ‘구더기 무서워 장독을 없애면 안 된다’며 대책을 주문하면서 논쟁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수학여행을 원하는 학부모들은 대체로 공감하지만, 교사들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얼마나 줄었길래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일까. 초등학교 6,008곳 중 지난해 수학여행을 간 학교가 2,936곳으로 조사되었다.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교사들은 그 이유를 안전관리 부담 때문이라고 말한다. 2022년 11월 강원도 속초에서 체험학습 중 발생한 사고가 결정적 계기인 것 같다. 당시 담임교사가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서, ‘잠깐의 부주의도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학교 현장에 깊게 자리 잡은 것이다. 여기에 일부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까지 더해진다. 일정, 장소에 대한 불만은 물론이고, 도시락 준비나 장기 자랑 생중계 같은 요구까지 있다는 이야기이니 그냥 지나갈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숙소와 식사에 대한 민원은 일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이 선택하는 가장 안전한 길은 결국 하나다. ‘아예 나가지 않는 것.’ 여기에는 ‘위축되는 교사들’이라는 분명한 맥락이 있다.

교사들은 체험학습의 교육적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떠나는 이유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조가 위험을 개인에게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학교안전법이 개정되어 일정 부분 면책 근거가 마련됐지만, 여전히 ‘주의의무’의 범위는 모호하고 광범위하다. 버스 타이어 상태까지 교사가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은 과장이 아니라 현장의 체감이다. 대통령이 제시한 해법, 즉 안전요원 증원도 한계를 가진다. 인력이 늘어도 책임이 분산되지 않는다면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1차 책임이 교사에게 집중되는 구조라면, 어떤 보조 장치도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못한다.

이 문제를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순간, 해법은 사라진다. 대통령의 말은 교육의 본질을 지키자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교사들이 느끼는 현실과는 간극이 있다. 교사들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책임 구조 속에서 생존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근본적 질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경험을 허용할 것인가. 완벽하게 통제된, 위험이 제거된 교실 안의 교육만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일정한 위험을 관리하면서, 세상과 부딪히는 경험을 통해 배우게 할 것인가.

소풍 가는 길이 두려운 사회는 정상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사회 역시 건강하지 않다. 교사가 법적 불안 없이 아이들을 이끌 수 있어야 하고, 학부모는 그 과정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하며, 국가는 그 사이의 책임을 제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수학여행은 한 세대의 기억을 만드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왜 안 가느냐’는 질책이 아니라, ‘왜 못 가느냐’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할 때, 아이들은 다시 길 위에서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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