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대계 교육, 성급한 개혁보다 신중한 설계가 먼저다

  • 채점하기 편하려고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채점하기 편하려고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는 이 한마디는 오랫동안 우리 교육이 안고 있던 고민을 정면으로 드러냈다. 객관식 중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학생들의 사고력보다 문제풀이 능력을 키우고 학교를 입시 준비 기관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AI 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빠르게 찾는 능력이 아니라 질문하고 분석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어 내는 역량이라는 점에서도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토론과 프로젝트 중심 수업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순간 학생들은 다시 수능 대비 문제풀이에 몰입한다. 입시가 교육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학교는 창의성과 탐구보다 정답을 맞히는 기술을 가르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대입 제도의 변화가 공교육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교육은 이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교육제도는 철학과 현실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서·논술형 평가가 확대되면 학생들의 사고력과 표현력을 평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채점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교사들의 평가 전문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지역과 학교 간 교육 여건의 차이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해답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논술 사교육이 다시 확산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정부는 국가 교육 AI를 활용하면 이러한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AI는 채점의 일관성을 높이고 학생들에게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AI 역시 교육을 지원하는 수단일 뿐이다. 어떤 답안을 우수한 사고로 인정할 것인지, 창의적인 표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AI의 판단을 누가 검증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논란을 낳을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입시만 바꾼다고 교육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교육과정과 수업 방식, 교사 연수, 평가 체제, 대학의 선발 방식이 함께 변화해야 한다. 어느 한 부분만 급하게 손보면 학교는 새로운 입시에 맞춰 또 다른 형태의 문제풀이 교육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개혁은 하나의 제도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교육 생태계 전체를 함께 설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교육은 백년대계다. 오늘의 정책은 10년, 20년 뒤 우리 사회를 이끌 인재를 길러낸다. 그래서 교육개혁은 정치 일정에 맞춰 속도를 내기보다 충분한 연구와 시범 운영, 현장의 검증, 국민적 숙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성급한 개혁은 새로운 문제를 낳지만, 치밀하게 준비된 개혁은 한 세대의 미래를 바꾼다.

객관식을 유지할 것인가, 서·논술형을 확대할 것인가가 본질은 아니다. 진정한 과제는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깊이 생각하며 미래 사회를 살아갈 힘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을 만드는 일이다. 미래 교육은 단순히 시험 방식을 바꾸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교육의 철학과 학교의 변화, 그리고 사회적 신뢰가 함께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백년을 내다보는 교육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일수록 더욱 신중하게 설계하고 충분히 검증하며 사회적 공감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미래 세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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