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일본, 사립대 붕괴 경고음

[ 대학에서 곱셈, 나눗셈, be 동사 다시 가르친다. ]

일본이 결국 칼을 빼 들었다.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더 이상 ‘대학 유지’라는 명분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이다. 대학의 절반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일부에서는 중학교 수준의 수업까지 등장하자 정부가 직접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현지 언론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재무성은 2040년까지 사립대 250개교를 줄이고 학부 정원을 14만 명 감축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대학 축소’를 숫자로 못 박은 사실상의 구조개혁 선언이다. 현재 624개에 달하는 사립대 가운데 약 40%가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의 뿌리는 인구이다. 1992년 205만 명이던 18세 인구는 2024년 109만 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그러나 같은 기간 사립대는 오히려 1.6배 증가했다. 수요는 급감했는데 공급은 폭증한 구조적 불균형이 누적된 결과, 지난해 사립대의 53%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대학이 ‘선택받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학생을 구걸하는 기관’으로 전락한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교육의 질이다. 일본 재무성은 일부 사립대에서 사칙연산이나 영어 be 동사 같은 기초 개념을 다시 가르치는 사례를 공개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대학이 더 이상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금을 투입해 유지되는 대학에서 중등교육 수준의 수업이 이뤄진다면, 이는 단순한 비효율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붕괴 신호다. 그럼에도 정부는 매년 약 3000억 엔(약 2조 7800억 원)의 사학보조금을 투입해 대학을 지탱해 왔다. 하지만 ‘지원 → 연명 → 질 저하’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지원을 줄이고 구조를 바꾸는 쪽으로 정책 방향이 급선회하고 있다.

교육 당국인 문부과학성 역시 사립대 규모의 ‘적정화’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보고 있다. 앞으로는 모든 대학을 살리는 대신,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미래 산업과 직결된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경쟁력이 없는 대학은 자연스럽게 퇴출시키는 방식이 유력하다. 대학도 산업처럼 ‘선별과 집중’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래 필요한 인재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할 마지막 기회라고 경고한다. 노동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떤 인재를 길러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대학만 유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대학 구조조정은 단순한 교육 정책이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의 일부가 됐다.

일본의 선택은 남의 일이 아니다. 같은 저출산 경로를 걷고 있는 한국 역시 머지않아 같은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모든 대학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위해 일부를 포기할 것인가.” 지금 일본이 내린 답은 분명하다. 더 늦기 전에, 버릴 것은 버리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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