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건국 지도자 리콴유는 20세기 후반 가장 강력한 국가 설계자로 평가된다. 1923년 태어나 2015년까지 생을 이어간 그는 영국 식민지였던 도시를 독립 국가로 탈바꿈시키고, 자원 하나 없던 작은 섬을 세계 최고 수준의 부국으로 끌어올렸다. 오늘날 싱가포르가 1인당 국민소득 9만 달러에 육박하는 경제 강국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그의 통치 철학과 실행력이 자리한다.
리콴유의 정치 인생은 격변의 연속이었다. 영국으로부터의 자치 확보, 싱가포르의 말레이시아 연방 합류, 그리고 불과 2년 만의 강제 분리까지 국가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순간을 연속으로 맞았다. 그러나 그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했다. 독립 이후 싱가포르는 생존 자체가 목표였고, 리콴유는 이를 ‘성장’과 ‘경쟁력’이라는 전략으로 바꿔냈다.
그 핵심에는 ‘깨끗한 정부’가 있었다. 집권 초기 그는 각료들과 함께 흰 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부패와 결별하겠다는 상징적 선언이었다. 식민지 시절 만연했던 부정부패에 환멸을 느끼던 국민들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정치적 메시지였다.
제도 설계는 더욱 치밀했다. 리콴유는 공직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적용했다. 우선 공무원 급여를 대폭 인상했다. 민간 기업과 경쟁 가능한 수준의 보수를 제공함으로써 인재를 정부에 묶어두겠다는 전략이었다. 현재 싱가포르 고위 공무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총리 연봉은 약 220만 싱가포르달러로, 삭감 이후에도 주요 국가 지도자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높은 보수는 부패 유인을 차단하는 장치였다. 공직자가 합법적 소득만으로도 충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들면서, 동시에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했다. 총리 직속 기관인 부패행위조사국은 강력한 권한을 바탕으로 모든 공직자의 재산 형성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합당한 설명이 없는 자산은 불법으로 간주된다.
실제 사례는 엄정한 원칙을 보여준다. 1980년대 국가개발부 장관이던 테칭완 사건에서 리콴유는 정치적 타협을 거부했다. 조사 과정에서 접촉 요청이 있었지만 이를 일축했고, 결국 당사자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권력 내부의 부패에도 예외를 두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분명히 전달된 사건이었다.
리콴유의 통치는 단순한 경제 성장 정책이 아니었다. 그는 정부의 청렴성과 효율성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규정했다. 여기에 외국 자본 유치, 교육 투자, 법치주의를 결합해 싱가포르를 글로벌 허브로 탈바꿈시켰다.
그의 유산은 지금도 유효하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가장 투명한 행정 시스템과 높은 정부 신뢰도를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세계 금융과 물류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리콴유는 생전에 “작은 나라일수록 더 잘해야 살아남는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국가 운영 원칙이었다. 청렴, 능력주의, 그리고 강력한 실행력. 이 세 축이 오늘날 싱가포르를 만든 핵심 동력이다.
국가의 미래는 결국 제도와 리더십의 산물이다. 리콴유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떤 국가를 설계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설계를 실행할 의지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