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이 출판 생태계 전반을 흔들고 있다. 몇 시간 만에 전자책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도서관 납본 제도와 보상금 지급을 둘러싼 우려가 제기됐다. ‘AI 도서가 세금을 축낸다’는 자극적 의혹의 실체는 무엇인가.
인류의 지식 보존을 목적으로 한 납본 제도는 세계 각국이 채택한 장치다. 국내에선 도서관법에 따라 책을 발행하면 30일 이내에 국립 도서관에 제출해야 한다. 종이책은 2부, 전자책은 온라인 파일로 납본한다. 도서관은 공공 보관의 대가로 정가 1부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지급한다.
문제는 전자책이다.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전자책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자, 납본 보상금이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론상으로는 1만원짜리 전자책 1만 종을 만들어 납본하면 1억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통계도 논란을 키웠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따르면 납본 수량은 2021년 16만9000권에서 2024년 17만7000권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보상금은 14억4000여만원에서 16억3000여만원으로 증가했다. 일부 매체는 이를 근거로 ‘AI 도서 싹쓸이’ 의혹을 제기했다.
논란의 중심에는 출판사 루미너리북스가 있다. 이 회사는 1년 새 약 9000권의 책을 출판했다고 밝혀졌다. 휴일 없이 하루 20권이 넘는 물량이다. 회사 측은 AI로 생성한 콘텐츠를 AI 학습 데이터로 활용하려는 목적이었으며, 납본은 미이행 시 불이익을 우려한 행정적 절차였다고 설명했다. 보상금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도서관의 설명도 같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납본 수집 지침에 따라 분량 미달, 내용 반복 등의 사유로 해당 전자책을 전부 제외했고, 보상금 역시 지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른 ‘AI 출판사’의 대규모 납본 사례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늘어난 납본 수량은 무엇 때문일까. 출판 현장에선 AI가 제작 과정을 단축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료 수집, 초고 구성, 표지와 레이아웃까지 AI가 보조하면서 전자책 제작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출판문화협회 집계에 따르면 2024년 신간 발행 종수는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작가들의 활용 사례도 늘고 있다. 황석영은 최근 공개 발언에서 AI를 소설의 밑그림을 그리는 도구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창작의 보조 수단으로서 AI가 현장에 안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이번 논란의 핵심은 ‘보상금이 실제로 지급됐는가’가 아니다. 제도가 현재는 걸러내고 있지만, 향후 AI 도서가 급증할 경우 공공 보관 체계가 감당할 수 있는지, 세금이 투입되는 보상 구조가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이다. 창작을 돕는 도구이자 제도의 허점을 노릴 수 있는 수단이라는 AI의 양면성이 출판 현장에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