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참으로 괴짜같고 무서운 분이셨다. 5학년을 마칠 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선생님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가까이 가기 어려운 존재셨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선생님 덕분에 나는 인생에서 가장 많은 것들을 배웠다. 깡촌 시골 아이였던 내가 감히 상상도 못 했던 피아노를 처음 배운 것도 그때였다. 그 경험은 훗날 내가 교사가 되는 데까지 이어졌다. 그림 실력이 한 단계 껑충 오른 것도, 웅변대회와 고전 읽기대회에 나가 최고상을 받은 것도, 도내 일제고사에서 1등을 했던 것도 모두 5학년 그 해에 일어난 일들이다. 단 1년의 기간이었지만, 나는 그때 유난히도 많이 자랐다. 그래서일까. 국민학교 5학년을 떠올리면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끝도 없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또렷한 기억 하나가 있다. 나는 너무도 순진해서, 5학년이 될 때까지 선생님은 화장실을 가지 않는 줄 알았다. 선생님은 ‘이슬’만 먹고 사시는 ‘신선’ 같은 분이라고 믿었다. 요즘이야 교사와 학생이 같은 화장실을 쓰기도 하지만, 당시 시골 학교에서는 선생님 화장실이 학생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따로 있었다. 그러니 선생님이 화장실 가시는 모습을 볼 리가 없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6월의 어느 날. 선생님은 우리에게 자습을 시키고는 잠시 교실을 비우셨다. 비가 오니 논의 물고를 보러 가셨으려니, 우리는 생각했다. 당시 선생님은 시골에서 농사도 함께 짓고 계셨던 분이었다. 선생님이 안 계신 교실에서도 우리는 숨소리조차 죽이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집중하지 않았다가는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랐으니까. 그런데 그때,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선생님도 안 계시고, 내가 반장이기도 해서 조용히 다녀와도 되겠다 싶었다. 시골 학교 화장실은 모두 푸세식이다. 소변 보는 곳도 홈을 길게 파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구조이다. 사람이 없을 때는 대개 화장실 문이 열려 있는데, 그날은 한 칸의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것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살짝 문을 당겨 보았다. 그러자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다시 저절로 닫혔다. 이번엔 조금 더 세게 당겼다. 또다시 문은 열렸다가 자동으로 닫혔다. 너무도 신기한 마음에 교실로 돌아가 친구 여섯 명을 불러왔다. 혹시 안에 뭔가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우리는 새끼줄을 문고리에 묶었다.
“하나, 둘, 셋!” 힘껏 잡아당기는 순간, 문이 열리며 무언가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자세히 보니… 세상에! 우리 선생님이 볼일을 보시던 그 모습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계시는 것이 아닌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걸음아 나 살려라 교실로 도망쳐 돌아왔다. 숨을 헐떡이며 국어책을 펴고 읽는 척 고개를 숙였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땀과 섞여 책 위에 똑똑 떨어진다. 불안과 공포, 긴장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잠시 뒤, “드르륵!” 교실문이 열리며 선생님이 들어오시는 순간의 가슴 철렁하던 느낌은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 뒤의 일은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날 이후로 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선생님도 화장실을 가신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실이 어찌나 큰 충격이었는지, 얼마나 큰 실망이었는지 지금도 나의 기억 속에 그 때의 그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어쩌면 나는 선생님이 영원히 ‘이슬만 드시는 신선’으로 남아 있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교사가 되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때의 선생님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나 역시 ‘이슬만 먹고 사는 선생님’으로 남겨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 번은 우리 반이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잘못 가르쳤으니, 내가 벌을 받겠다”고 하시며 반장이던 나에게 매를 쥐여 주고는 때리라고 하셨다. 닭똥 같은 눈물만 흘리며 죄송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울기만 했었다. 교사가 된 뒤 9년째 되던 해, 나는 꽤 유명한 사립학교로 옮겨 5학년 담임을 했다. 아이들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고, 학교 분위기도 낯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문득 나의 5학년 때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분이 쓰시던 방식을 조심스레 적용해 보았다. 결과는 놀라울 만큼 성공적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사립학교 처음의 1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10여 년을 사립학교에서 보내고 다시 공립학교로 돌아와 또다시 5학년을 담당했다. 그때도 쉽지 않은 아이들이 많아 다시 한번 같은 방법을 써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반장이라는 아이가 정말로 나를 때리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이 때리라고 하셨잖아요!” 화를 낼 수도, 그렇다고 웃고 넘어갈 수도 없는 난감한 순간이었다. 세상도, 아이들도 참 많이 변했음을 절실히 느꼈다. 시대가 바뀌면서 아이들도 어른도 모두 달라진 것이다. 그 변화가 모두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진만, 좋은 쪽이 더 많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내 삶에 많은 것을 깨우쳐 주신 그 ‘괴짜 선생님’과의 인연을 소중한 보물로 간직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오늘도 마음속으로 되뇐다. 나도 지금의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이슬 같은 선생님’이고 싶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