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동네건 앞산은 있다 ]
어느 동네에나 앞산은 있다. 앞에 있어서, 늘 마주 보고 있어서, 혹은 너무 가까워 굳이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되었기에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내 기억에도 그런 고향 앞산이 있다. 한국의 보통 남성들이 품고 사는 앞산의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내 고향 앞산은 낙동강이 크게 휘돌아 흐르고 그 끝자락에서 지류인 위수강이 합쳐지는 곳에 제법 험한 얼굴로 서 있다. 강물이 돌아가는 자리에는 높이 오십 미터 남짓한 절벽이 생겨났고, 사람들은 그 바위를 상사바위라 부른다.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강물에 몸을 던졌다는 옛이야기에서 비롯된 이름이라 한다. 절벽 아래에는 강물이 휘몰아치며 만들어 낸 깊디깊은 ‘소’가 있다. 너무 깊어 물빛이 시커멓게 보인다. 어른들은 명주실 한 타래를 다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는다고 하시곤 하셨다. 가끔 그곳에서 잉어 떼가 몰려 나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장면은 장관이다. 잉어의 크기가 집채만 하다. 몸길이 1미터도 넘는 잉어들이 떼를 지어 올라가는 모습은 생전 한 번 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해 질 무렵, 깊은 ‘소’에서 빠져나온 잉어들이 석양을 등지고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한 폭의 동양화이다.
절벽 중간쯤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설 만한 공간이 있고, 그곳에 천도복숭아 한 그루가 서 있다. 그 옆에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살았다는 한 쌍의 매가 둥지를 틀고 있다. 우리 동네에는 그 복숭아를 따 먹어야 어른으로 인정받는 오랜 풍습이 있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그 일을 해냈다. 정오 무렵,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낮잠을 즐기는 시간을 골라 ‘소’를 헤엄쳐 건너야 한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보다 더 무서운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물속에서 내 발을 붙잡아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이다. 그 소에 빨려 들어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여럿 있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으니 그곳을 지날 때 몸이 굳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당황하여 허둥대며 손발을 함부로 놀리면 오히려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숨을 고르고, 물을 뒤로 조용히 밀어내야만 몸이 앞으로 나아간다.

천신만고 끝에 절벽 아래에 닿아 숨을 돌리면, 이번에는 매가 덤벼든다. 자기 영역을 침범한 침입자를 향해 가차없이 공격을 퍼붓는다. 절벽 중간이라 해도 높이가 사오십 미터는 족히 된다. 떨어지면 저세상 행이다. 그 모든 것을 지나 마침내 천도복숭아를 따 입에 넣었을 때의 희열감은 지금도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른이 된 지금도 큰 어려움 앞에 서면 그날의 각오와 용기를 떠올리며 견디곤 한다. 그때의 마음으로라면 이 세상에서 못 해낼 일이 없다. 그곳에는 동네 어른들의 또 다른 장치가 있다. 망치와 정 그리고 널찍하게 다듬어 놓은 바위가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되었다는 증표로 이름을 거기에 새기고 내려오라는 뜻이다. 지금도 그 바위에는 중학교 2학년이던 내가 새긴 이름이 남아 있을 것이다.
앞산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낙동강 본류를 끼고 ‘유대감 집’ 이라 불리던 대궐 같은 대감집이 나타난다. 그런 시골에 어떻게 그리 웅장한 집이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고, 우리는 그냥 그렇게 불렀다. 국민학교 5학년 봄소풍을 그곳으로 갔었는데, 처음 보는 형광등이 너무 신기해 켰다 껐다를 반복하다가 그만 떨어뜨린 일이 있었다. 그때까지 우리 동네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으니 얼마나 신기했을까? 당시 담임 선생님이 주인에게 얼마나 진땀을 흘리셨을지는 어른이 되고서야 짐작이 갔다. 그 집을 지나면 ‘무릉’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이름 그대로 무릉도원 같은 곳이다. 신선이 살 것 같은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동네 아이들도 우리 마을에 있는 ‘신산국민학교’를 이십리도 넘게 걸어서 다녔다. 그중 한 친구는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어울리게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고위 공무원이 되었다. 이번 여름, 한국에 가면 꼭 연락해 봐야겠다.
험한 산이었지만, 앞산은 늘 나를 품어 주었다. 여름이면 소를 타고 풀을 뜯기러 갔고, 가을이면 친구들과 꿀밤을 털었다. 겨울에는 형들과 토끼몰이를 했고, 봄이면 누나들을 따라 봄나물을 캐러 갔었다. 눈이 너무 많이 와 노송들이 찢어져 가슴 아파했던 해도 있었고, 상사바위에 앉아 석양을 보며 장차 어른이 된 내 모습을 그려 보던 날도 있었다.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던 곳도, 옆 동네 아이들과 패싸움을 벌이던 곳도, 죽을 만큼 슬픈 날 목청껏 울던 곳도 모두 그 앞산이었다. 지금도 앞산 어딘가에는 내 냄새가 진하게 베어 있을 것 같다. 눈을 감으면 그 산의 구석구석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