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그를 좋아한다. 일본에 살면서도 개그 프로그램만큼은 챙겨 본다. 웃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웃음 속에 숨어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좋기 때문이다. 한국의 「개그콘서트」를 보다 보면, 유난히 마음에 걸리는 유행어가 하나 있다. “씁쓸하구만…!” 몸집 큰 왕초가 이리저리 구겨지며 내뱉는 그 한마디는, 웃음을 터뜨리게 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슴 한켠을 찌른다. 오늘, 나는 그 왕초처럼 정말 ‘씁쓸한’ 하루를 보냈다.
일본 도쿄에서 산 지도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살다 보니 자연스레 여러 모임과 단체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오늘은 그중 한 단체의 총회가 있는 날이었다. 새 회장이 선출되고, 일본 사회 속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포부가 이어졌다. 회의장을 가득 메운 박수 소리 속에서, 일본 땅에 살고 있지만 분명히 ‘한국인’으로 함께 서 있다는 묘한 자긍심과 뿌듯함이 밀려왔다. 1부 행사가 끝나고 2부 교류 파티가 시작됐다.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건네며 인연을 이어갔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나는 작년까지 ‘코리안 아카데미’라는 민족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맡아 한글을 가르쳤다. 수강생들 가운데에는 입국관리국 국장, 세무사협회 회장 등 일본 사회에서 이름을 알 만한 인사들도 있었다. 마침 그날 총회에서 수강생인 세무사협회 회장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려는데, 잠시 후 그가 누군가를 데리고 다시 찾아왔다. 그 회장은 늘 나를 “센세이”라 부르며 예를 갖춘다. 아마 그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개받은 사람은 내가 꽤 대단한 인물로 오해한 듯했다. 그는 얼떨결에 허리를 깊이 굽히며 내게 명함을 내밀었다. 나 역시 당황해 급히 몸을 낮추며 예를 갖추려는 순간, 회장이 말했다. “동경한국학교에서 근무하고 계십니다.” 그때였다. 그 사람은 굽히던 허리를 급히 바로 세웠다. 표정이 미묘하게 굳더니, “아… 그러세요.” 짧은 한마디와 함께 명함을 거의 던지듯 내밀고는, 더 이상 말도 없이 다른 자리로 가 버렸다. 소개하던 회장이 민망해질 정도로 노골적인 태도였다.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솟구쳤다. 조금 전까지 가득 차 있던 뿌듯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설명하기 어려운 씁쓸함만 남았다. 멍하니 손에 쥔 명함을 내려다보니, 한국에서는 제법 ‘저명인사’라 불릴 만한 직함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더 씁쓸했다. 결국 그에게 나는 도움 안 되는 ‘교사’였고, 교사라면 충분히 가볍게 대해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마 이것이 우리 한국 사회에서 교사가 대접받는 평균적인 위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면전에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그것도 외국인들이 함께 있는 공식적인 교류의 자리에서, 한국의 대표성을 지닌 인사가 말이다.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아닐 텐데….
문득 일본에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일본의 어떤 총리가, 자식의 교육 문제로 가정 방문을 온 담임 교사를 맞이하기 위해 맨발로 대문까지 뛰어나가 허리를 굽히고 정중히 모셨다는 일화. 그가 고개를 숙인 것은 자신이 못나서가 아니라, 담임이 잘 나서가 아니라, 소중한 자녀의 ‘스승’ 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총리의 아들은 성장하여 어떤 삶을 살았을 것인지는 굳이 덧붙일 필요도 없다. 아이들은 말보다 어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한다. 부모와 어른, 그리고 스승을 대하는 태도를 그들은 그대로 배우며 성장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는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유행어가 머리에 맴돈다. [웃음 뒤에 남는 한마디, “씁쓸하구만…!”] 오래 이 말이 가슴에 남는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