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소독에 활용돼 온 자외선 기반 기술을 암 치료에 응용한 맞춤형 암 백신이 미국에서 임상시험 단계에 들어갔다. 무력화한 암세포를 다시 체내에 주입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재발성 난소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1상 임상이 이달 시작된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레이 굿리치 교수 연구팀은 헌혈 혈액을 소독하는 데 사용돼 온 ‘미라솔 공정’을 암 백신 개발에 적용했다. 이 공정은 자외선과 리보플라빈을 이용해 혈액 속 바이러스와 세균의 유전물질을 손상시켜 증식과 감염 능력을 제거하는 기술로, 유럽과 캐나다 등에서 혈액 안전을 위해 활용돼 왔다.
연구진은 이 공정을 암세포에 적용할 경우 세포의 분열 능력은 차단하면서도 형태와 항원 구조는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자외선 처리를 거친 암세포가 더 이상 종양을 형성하지 못하지만, 면역계에는 종양 특이 항원을 그대로 제시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른바 ‘비활성화된 암세포 백신’을 통해 체내 면역 반응을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임상에서는 재발성 난소암 환자 8명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면역 반응을 평가한다. 환자는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뒤, 채취한 종양 세포를 자외선과 리보플라빈으로 처리해 개인 맞춤형 백신을 제조한다. 여기에 면역 증강제를 더해 총 세 차례 접종하고, 부작용과 면역 활성 정도를 관찰한다.
굿리치 교수는 기존 방사선이나 강력한 화학적 처리 방식이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과정에서 면역 반응에 중요한 신생항원까지 함께 손상시킨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한다. 자외선 기반 접근법은 이러한 항원을 보존해 면역계가 종양을 인식하고 기억하도록 돕는 데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국제 암연구 네트워크인 루트비히 암 연구소 로잔 지부의 암 백신 연구진은 암세포 전체를 활용하는 방식이 종양 특이 신항원을 폭넓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인정한다. 반면 프레드 허친슨 암센터와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진 등 일부 면역학자들은 암세포 전체 백신이 과거 여러 차례 임상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종양이 면역 공격을 회피하는 능력이 뛰어나 실제 임상 효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연구팀은 이번 임상이 안전성과 면역 반응을 확인하는 초기 단계인 만큼, 향후 면역항암제나 표준 치료와의 병용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암 재발을 늦추거나 예방하는 보조 치료 수단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