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지나니 눈세상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처럼, 니가타현 나에바 스키장의 설원은 눈부시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겨울방학을 맞아 이곳을 찾은 동경한국학교 4, 5, 6학년 학생 80명은 은빛 세상 속에서 즐거운 탄성을 질렀습니다. 이번 스키캠프는 분명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 너머로, 문득 나의 유년 시절 한 조각이 겹쳐 보였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 4km나 떨어진 읍내 학교를 다녔습니다. 겨울이면 매서운 추위 속에서 책보자기를 허리에 메고 달렸습니다. 앞서가던 형들이 드문드문 피워놓은 모닥불에 언 손발을 녹이며 가던 그 길은 고난인 동시에 생존의 지혜를 배우는 삶의 체험장이었습니다. 여름이면 뙤약볕을 피해 해가 뜨기도 전에 학교로 내달렸고, 고학년 즈음엔 발바닥 크기의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직접 만든 ‘발스케이트’를 타고 얼어붙은 강 위를 지치며 등교하곤 했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대나무를 쪼개 눈 언덕을 내려왔고, 여름이면 냇가에서 개구리 수영을 하면서 자연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 달러를 염원하던 그 어려운 시절, 결핍 속에서 ‘우리’라는 공동체와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체득하면서 자랐습니다.

오늘날의 아이들은 보고 있으면 참으로 부럽습니다. 대한민국은 풍요로워졌고, 아이들은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과 양질의 교육 속에서 자랍니다. 하지만 지금 스키캠프에서 바라 본 아이들의 모습은 못내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고글이나 장갑이 없어져도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곁의 친구가 아파도 무심하게 지나치는 아이들. 개인 물건이 어지럽게 널브러진 숙소 방 안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입니다. 부모가 원하는 분야나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부분에서는 놀라운 성취를 보이지만, 종합적인 인격체로서 갖춰야 할 ‘공동체 의식’과 ‘기본적인 생존 역량’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까지 합니다.

2000년 전 소크라테스도 “요즘 아이들은 걱정스럽다”고 걱정했다지만,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현상은 단순히 세대 차이로 치부하기엔 무거운 마음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이 세상 환경의 문제인지, 가정교육의 문제인지, 아니면 학교 교육의 한계인지 명확히 답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은 ‘어른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물질적 풍요만을 정답으로 제시할 때, 아이들은 나눔의 가치를 잃어버립니다. 우리가 결과 중심의 성취만을 독려할 때, 아이들은 곁에 있는 친구의 아픔을 보지 못합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부족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듯, 우리 아이들이 ‘나’만 아는 우등생이 아니라 ‘우리’를 아는 성숙한 시민으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어른들과 교육자들이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이번 나에바 스키캠프의 눈부신 설경이 아이들에게 단순한 유흥의 기억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고 기대해 봅니다. 그 차가운 눈 위에서 타인과 보조를 맞추고, 자신의 물건을 귀히 여기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진짜 교육’의 시작점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우리 아이들의 바른 성장을 위해, 이제는 우리 어른들이 먼저 고민의 발걸음을 떼어야 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