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영칼럼 46> jky의 영어이야기

– R과 L의 불편한 동거 –

한국인이 어려워하는 여러 가지 발음 중 R과 L의 구별 또한 난제 중의 난제다. 한국 사람이라면 R과 L 때문에 겪는 웃픈 오해들 한두 번은 다 있을 것이다. 외국 친구들이랑 대화하다가, 혹은 비즈니스 미팅에서 어쩌다 한번 튀어나온 발음 때문에 순간 당황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영어가 모어인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명확한 차이이지만, 한국인에게는 별 차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한 발음이 상대방은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A plate of hamburger steak topped with sauce and butter, accompanied by sliced bread, broccoli, and carrots.

필자가 젊은 시절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종종 일어나던 오해가 있었다. 경양식을 주문할 때는 늘 선택의 순간이 온다. 돈가스든 함빡 스테이크 든 메인을 정하고 나면 사이드 메뉴가 기다린다. 밥과 빵 중에서 고르라고. 그때 그냥 빵이면 빵이라 하고, 밥이면 밥이라고 하면 된다. 그런데, 좀 고상해지고 싶거나 영어 좀 한다고 과시(?)하고 싶으면 밥과 빵 대신에 영어로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마치 현재의 아파트 이름이 대부분 국적 불명의 외래어 잔치인 것처럼 한국인은 외국어를 참 좋아하고 사랑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외국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빵 대신 bread라고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으나, 밥 대신 밥의 재료인 [Rice]라고 해야 하는데 머리에 있는 이(일명 ‘머릿니’)의 의미로[Lice]라고 발음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밥 대신 사람의 머리에 기생하는 해충인 ‘이’를 먹겠다는 사람을 보며 웨이터는 얼마나 황당해할까? “I want to eat rice!” 대신 “I want to eat lice!”라고 할 바에는 차라리 <밥(으로) 주세요>하는 게 낫다.

R과 L의 불편한 동거의 예를 더 알아보자. Fry(튀기다)와 Fly(날다)를 헷갈려서 “Would you like some fried chicken?” 하려다가 “Would you like some flied chicken?”이라고 말하면 웨이터의 입장에서는 후라이 치킨이 아닌 공중에 날아다니는 요상한 동물의 모습을 연상하며 당황할 수도 있다. R과 L의 구별이 필요한 이유다. 이렇게 <rice-lice와 fried-flied>처럼 R과 L의 차이로 인해 의미가 달라지는 것 즉, 의미를 구별해 주는 최소 단위를 <음소(phoneme)>라고 한다. 음소(phoneme)라는 문법 용어가 있다는 것은 한국어든 외국어든 그만큼 음소가 단어를 구별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국어에 있어서 <나는 바다에 가고 싶어>를 <나는 파다에 가고 싶어>라고 하면 안 되고, <나는 눈이 아파>라고 할 걸, <나는 문이 아파>라고 하면 비문이 된다. 어느 언어든 음소는 무시하면 안 되는 중요한 문법 요소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Collect(수집하다)와 Correct (수정하다, 올바른)의 예를 보자. 회사에서 팀장이 “Please collect this data.”라고 해야 할 상황에 발음 실수로 “Please correct this data.”라고 하면, 팀원들이 엉뚱한 작업에 매달릴 수도 있다. 데이터를 새로 모아야 할 상황에 이미 있는 멀쩡한 데이터를 고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음소를 무시한 사소한 발음 하나가 업무의 흐름까지 바꾸어 회사에 엄청난 손해를 입힐 수도 있다. 생각보다 흔히 발생하는 발음 오류 현상이다.

이번에는 Read(읽는다)와 Lead(이끌다)의 음소에 대해 알아보자. 이 두 단어도 은근히 헷갈린다. “I want to read this story.”와 “I want to lead this story.”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I want to read this story.”라고 하면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싶어>서인데, “I want to lead this story.”라고 하면 <나는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싶어>가 된다. 전혀 다른 상황이 발생한다. 이 이야기를 읽는 게 아니라,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가겠다는 건가? 하고 오해를 살 수 있다. 회사에서 어떤 이야기를 읽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상황에 읽지도 않고 이야기를 이끌어가겠다는 오해를 준다면 이런 오해들이 쌓여 불신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는 자신감과 자존감에 손상을 주어 자신의 커리어에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음소(phoneme)가 생활 영어에서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독자들 대부분이 음소(phoneme)라는 단어가 매우 생경할 것이다. 그만큼 학교 교육이 생활 영어보다는 대입 영어에 종속된 성적 위주의 내신과 수능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는 국어와 수학처럼 도구 과목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 세 과목이 도구 과목의 기능이 아닌 대입에 필요한 목적 과목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 결과 영어 성적과 영어 실력과는 괴리가 있다. 이제라도 학교 교육이 대입 종속기관의 역할이 아닌 교육의 본질로 회귀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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